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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 융 심리학으로 다시 쓴 어린 왕자
로베르토 리마 네토 지음, 차마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1월
평점 :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면 도로 아이가 되고 싶다.
어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아이였을 때 느꼈던 안온함, 이 두 가지 마음이 상충하면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무턱대고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기만을 소원하는 앙투안은 조언조차 어린이에게 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어린왕자에게 말하지만 어린 왕자는 알고 있다. 현명한 노인은 있을지언정 지혜로운 어린이는 없다는 것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국인 브라질에서 경제 관료로 일하다 은퇴한 후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저자는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서양과 동양의 신화와 철학을 섭렵해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 글을 쓰겠다는 목표답게, 대표적인 어른의 동화라 말할 수 있는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를 ‘앙투안’ 이라는 화자로 삼아 책을 썼다.
사막에 불시착한 앙투안은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의 부탁에 자신은 어린이가 아니라서 그릴 수 없다며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다고 토로한다.
앙투안과 어린왕자가 불러낸 노인은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는 없고 어린이 '처럼‘은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성숙한 어른은 될 수 있다며 신화와 문학속의 인물과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신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려다 추락한 이카로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확립한 융, 단테, 모세와 천사, 어린왕자가 만났던 이상한 어른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지만 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길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성장해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본래 지닌 자연스러운 성향을 잃지 않고, 창조성을 버리지 않고, 내면의 아이와 접촉이 끊어지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지.”
저자는 융 심리학중에 가장 핵심인 ‘개성화’를 가져와 언제까지나 순수하고 의존적인 아이에만 머물고 싶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부모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된 순간부터 ‘나’ 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변화하고 복잡한 세상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채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몸만 성장한 미성숙한 어른이 될 뿐인 것이다.
애초에 앙투안의 소원은 사막에 불시착한 상황처럼 불완전한 마음이 불러낸 헛된 희망이었다.
나만의 ‘자아’, 내가 가야갈 ‘길’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고 경험하며 진짜 어른이 되길 바라는 노인과 등장인물들의 조언이 참된 희망임을 앙투안이 알았다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