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양이경 지음 / 포춘쿠키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다운 시를 기대했다.

유년시절 여름방학만큼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날들이 또 있을까.

되돌아볼 여지가 많은 시들이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시집을 열었지만 낯선 시인의 이름만큼 낯선 시들로 가득해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으레 라고 하면 조금은 뜬구름 같은 단어의 나열을 자의적으로 해석해가며 읽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여타의 시들과 다른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시들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제목과 내용이 상반되어서 시 한편을 다 읽을 때쯤에는 추리소설에서나 봄 직한 반전이 느껴진다. 시인의 개인사와 현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루 잘 내포되어있어 별 다른 정보가 없는 시인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글이 곧 자신임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누구나 여름방학을 맞이해 물놀이를 갔던 추억 하나쯤은 있다.

는 처음으로 놀러간 바닷가에서 밀려온 파도에 한순간 정신을 잃는다.

너까지 잃어버리는 줄 알았잖아.” 눈앞에 나타난 일그러진 표정의 엄마는 를 끌어안고 울먹인다. “, 아빠를 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말이 없고 손등으로 아이스크림은 흘러내리고, 여름이 지나간다.

누구나 물놀이가 즐거운 추억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튜브를 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살에 밀려 둥둥 떠내려갔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미아가 될 뻔한 적도 있다. 팔목에 천막번호가 적혀있었기에 망정이지.

가 그 찰나의 순간 이미 잃어버린 아빠를 보고, 엄마는 또 가족을 잃어버릴까 가슴 철렁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진 이유다.

시집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에 존재하는 상황을 애매하면서도 한편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앞뒤로 배치해 꿈인지 생시인지, 상상인지 경험인지 경계가 모호한 시들이 다수다.

산문과 달라야 한다는 운문의 정의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제목답지 않게 서늘한 시집 한권을 읽으니 본격적인 겨울이다.

사계절에 자유로운 시의 매력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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