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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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도 전염병과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빠르게 퍼진다.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이 공포의 실체일수도 있겠다. 평소에는 밑바닥에 침잠해 있다가 해일 한 번에 수면으로 올라온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이 공포소설집은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저자가 생각하는 공포는 일상의 균열이다. 저자가 후기에 쓴 가난과 같은 말이다.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가난해지는 것이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혹은 공공연하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은밀한 욕망이 행동으로 발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론이다. 끝이 좋을 수만은 없는. 그것도 아니면 끝이 시작일수도 있다. 아기천사라는 뜻을 가진 어린유령이 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의 이야기는 끝맺음이 더 공포스럽다. ‘썩어 문드러진 발에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이는아이가 쫓아오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 어쩌면 고모할머니인지도 모를 유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후회스럽지만 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소녀들의 질투와 적의, 호기심이 빚어내는 위험하고 모호한 상황의<호숫가의 성모상>,<죽은자들과 이야기하던 때> 내용은 미성숙한 10대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엿보게 해준다. 유령을 불러내는 놀이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그 나이대만의 전유물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얼룩 한 점이 전체로 퍼져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쇼핑카트>의 이야기야말로 공포의 실체를 들여다본 느낌이다. 노숙자에게서 뺏은 카트 하나가 온 동네에 가난과 불행을 몰고 오는 전개는 그야말로 형체도 없는 전염병과 같다. 카트가 실질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동네의 한 구석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불쌍한 노숙자에게 전부일수도 있는 카트를 뺏었다는 사람들의 양심과 죄책감이 불운의 기운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공포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밤에 읽을 수 없어 낮에만 읽어야 할 정도의 공포소설집다운 은근히 무서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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