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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ㅣ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명이 시작하기 전 인간에게 개인 간 다툼은 있었을지언정 잔인한 전쟁이나 복잡한 이해관계는 없었다. 군집생활을 하고 국가를 형성하고 문명생활을 하면서 굵직한 이해관계가 생기고 전쟁이 시작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전쟁의 규모도 점점 커진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인류문명은 획기적으로 전환한다. 문명이 전환하는 만큼 국가 간 이해관계는 더욱 첨예해지고 전쟁은 악랄해져 그 시대 인류는 팔자 센 세상을 산다. 특히 힘없고 약한 국가들은 강대국의 배를 불리는 먹잇감으로 전락해 갖은 고초를 겪는다.
이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는 사연 많고 곡절 많던 그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유럽사회가 유태인을 어떤 시선을 바라봤는지 여실히 보여준 드레프쉬 사건. 러시아 차르(황제) 정권이 민중을 외면하고 지독한 독재를 일관하더니 마침내 썩은 문짝 쓰러지듯이 무너지고, 레닌이 사회주의체제를 수립한 볼세비키 혁명.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자본주의체제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낸 대공황.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의 공산당 토벌, 일본의 중국 침략을 이겨내고 세운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 순식간에 독일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은 뒤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히틀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난 아랍민족과 이스라엘의 분쟁. 이승만 독재체제에 맞선 4ㆍ19혁명. 베트남 전쟁. 흑백분리운동을 벌인 말콤 X. 일본의 역사왜곡. 독일의 갑작스런 통일.
책은 역사를 싸고 있던 막을 걷어낸다.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점에 초점을 맞춘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본주의의 배를 채울 식민지가 필요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유럽세계에서는 노동자들의 피땀을 딛고 하루가 다르게 산업이 발달했다. 산업원료가 필요했다. 열강들은 저마다 목표물을 찍어두었다. 20세기 초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청년이 상상도 못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그 당시 발칸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열강들이 그 사건을 빌미로 들고 일어난 것이다. 자국과 이해관계가 맞으면 손을 잡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총부리를 겨누었다. 그렇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평화가 둥지를 틀기도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역사를 돌리는 힘 중에는 개인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개인의 이익은 개인 간의 다툼으로 뺏고 뺏긴다. 국가의 이익은 국가 간의 전쟁으로 뺏고 뺏긴다. 물론 정상적인 거래나 무역으로 이익을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지고지순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자본주의를 만나, 전 세계는 상식과 도리를 무참히 짓밟고 오로지 개인의 이익, 국가의 이익만이 난립했다. 개인의 이익을 채워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정권을 잡은 권력자는 약소국가들을 쥐어짜 자신의 권력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지려 했다. 자신의 이익, 자국의 이익에 따라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다. 서로 대화하고 타협해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뒤죽박죽 섞여 서로 자신의 모순을 자랑했다. 더 크려고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다.
인류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아니, 성숙은 없을 것이다. 성숙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퇴보해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혼돈을 겪지 않고 성장하려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의견과 생각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계로 진보할 수 없다. 20세기 후반 독일이 통일을 했다. 통일 후 독일 사회는 안정을 찾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불평불만과 문제들로 몸살을 앓았다. 낙후한 동독 경제를 흡수하면서 서독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서독 국민은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 전보다 혜택이 못하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동독 국민도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해 불만이 쌓여갔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서로 다른 주장과 요구를 묵살하지 않았다. 끈기 있게 대화해서 의견차를 좁히고 대안을 찾았다. 오늘날 독일이 국민복지제도를 잘 갖추고 선진경제를 이끌어 가는 데는 대화와 존중으로 모순을 극복한 태도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