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 마르크스 : 역사를 움직이는 힘 지식인마을 24
손철성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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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역사, 철학―귀가 따갑도록 듣고 한번쯤 입에 올린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와 철학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가? 십중팔구 대답은 ‘아니다’일 게다. 너무도 복잡한 영역이라서 그저 모호한 이미지만으로 역사와 철학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빙산의 한 조각만 보고 단순하게 떠올리지 않은가 싶다. 역사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많은 역사가도 주장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준 모습은 다양했다. 역사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가 지나온 긴 길만큼이나 역사를 보는 시각도 참으로 다양하다. 많은 역사가, 철학가, 사상가가 평생을 기울여 나름의 역사철학을 펼쳐왔다. 이러한 역사철학이 흘러가는 물길을 크게 한번 돌린 철학자가 있으니, 헤겔과 마르크스다. 고등학교 때 윤리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아 확신할 순 없지만 헤겔은 변증법을 내세운 사람으로 배운 기억이 있는데 마르크스는 전혀 기억이 없다. 마르크스 사상이 철학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든지, 자본주의 교과과정에 싣기에는 사상이 급진적이든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런데 마르크스 사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역사에 얼마나 큰 획을 그었는지 감안해 보면 철학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게다. 20세기 초중반, 마르크스의 사상은 세계를 두 부류로 나눌 만큼 맹위를 떨쳤지 않았는가. 지금은 실패한 사상이 되어 있긴 하지만.

『헤겔 & 마르크스―역사를 움직이는 힘』에는 이성의 틀로 역사를 바라봤던 칸트, 칸트가 내세운 이성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변화하면서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관념론으로 역사를 바라봤던 헤겔, 헤겔의 변증법은 받아들이지만 관념론은 비판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역사를 바라봤던 마르크스가 나온다. 책은 칸트 철학으로 글머리를 열고 헤겔 철학으로 글을 전개하고 마르크스 사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 대해 얘기해 보자. 마르크스는 역사는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원시 공동체,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진보해 나간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살던 당시 유럽사회는 부르조아 혁명으로 중세 봉건제를 타파하고 자본가 계급이 세력을 과시한 근대 자본주의 시대였다. 자본가 계급은 대량생산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대량생산은 노동자의 피땀 위해서 가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한계가 여기 있다고 본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동을 시켜 더 많은 생산을 해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한다. 노동자는 더 많은 노동을 하지만 자신이 생산한 부를 제대로 분배받지 못한다. 노동을 팔아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소비할 여력이 모자라 소비를 점점 줄이게 된다. 따라서 생산물은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다. 자본가들 중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본가들은 파산해 노동자의 지위로 추락한다. 부는 극소수의 계층에게만 쌓이고 가난은 사회 전반을 덮친다. 결국 공황으로 치닫게 된다.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 두 계급이 있다. 두 계급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 노동자 계급은 혁명으로 새로운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그것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트리는 혁명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대한 자본주의에 짓밟혀 빛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혁명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체제가 바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폐지한, 공동소유, 공동분배를 말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높은 생산력을 달았다. 높은 생산력이 없으면 결국 분배할 토대가 빈약해지고 쪼들리는 분배는 결국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몰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동소유를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는 무엇으로 생산력을 높이 끌어 올릴 단 말인가? 이 책에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마르크스도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마르크스가 인간정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닐까. 많은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관심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일에는 관심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가 높은 생산력을 하겠다는 것은 물과 기름을 한데 섞으려는 시도는 아닐는지.

자본주의의 많은 잘못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흉내 내지 못할 완벽한 사상을 내세운 공산주의가 불같이 번졌지만 100년도 가지 못하고 깃발을 내린 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불완전한 인간에게 너무 완벽한 사상을 들이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열광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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