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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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반의어들 사이 정지와 진전을 멈추지 않은 시인, 김수영


평소 시에는 약한 터라, 책을 펼치기 전 김수영 시인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폭포>와 <풀>,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읽은 그 시를 쓴 사람이구나! 일명 '네임드' 시인을 26가지 키워드로 탐독한다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만 알았지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오히려 새로웠다. 


1. 일본어와 반(反)민족


"식민지 시대 때도 일본어로 제국을 겨냥했던 김사량이 있었고, 지금도 일본어로 부조리한 역사를 기록하는 디아스포라 작가 김시종, 김석범, 양석일 등이 있다.(p41)"


그에게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익숙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또는 반민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성급하다는 김응교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납작하고 단편적인 민족과 민중의 개념으로는 그 어떤 부조리에도 제대로 맞설 수 없다.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제국주의에 편승한 친일파 또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우리 언어를 잃은 식민지라는 암흑기에 자신만의 언어와 문체로 문제의식을 표출한 것이야말로 김수영 시인의 특징 아닐까.


2. 시민과 시인의 자유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 - <"김일성만세"> (p146)"


해방은 되었으나 시민의 자유는 파괴되던 1960년, 김수영은 시를 통해 불온사상의 인정이 언론 자유의 시작임을 피력한다. 시의 제목에 큰따옴표를 붙여 누군가의 사상을 인용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는, 그 어떤 사상이든 사회적으로 토론될 가치가 있다면 자유롭고 당당하게 인용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시민으로서 자유로워야 시인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기에.


3. 여성혐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문학사에 김수영이 남긴 업적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책은 시대적, 구조적, 개인적 한계로 인해 '꼰대' 기질과 여성혐오적 언어 사용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다만 김수영이 '여편네' 등의 단어를 사용한 연유는 단지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것을 넘어 타자의 호명을 통한 자기 혐오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어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의 시를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하는 현실은 과연 이전과 다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김수영을 통해 한국 시단의 한계 나아가 구조적 차별이 잔존하는 사회 자체를 직시할 시점이다.


4. 풀과 민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김수영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풀>을 조명한 마지막 챕터이다. 학교에서 바람은 억압을, 풀은 굴복하지 않는 민중을 의미한다고 배우고 외웠다. 그러나 책은 세계를 여는 힘으로서 바람을 새롭게 해석한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에 풀이 눕지만, 이것이 반복되며 풀은 바람 덕분에 눕고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간다. 천편일률적인 해석을 넘어 시와 시어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5. 더러운 역사와 영원한 사랑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거대한 뿌리> (p122)"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구절이 포함된 <거대한 뿌리>에서는 질척한 전통에서 낯선 새로움을 캐내려는 시인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제되지 않고 거친 그의 필적 사이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그림자를,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의 해답을 찾아가는 민중의 빛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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