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 곳곳에 하찮게 박혀있는 무해한 사람들의 모임

"결정을 못 하겠어요." 은행 강도는 말했다. 어쩌면 그날 한 말 중에서 그게 가장 솔직한 말일지 몰랐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얼른 어른이 돼서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임을 깨닫는다.

항상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느 당에 투표하고 어떤 벽지를 좋아하며 성적 취향이 어떻게 되고 무슨 맛 요구르트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면 시종일관 시시때때로 선택하고 선택을 당해야 한다.

은행 강도가 생각하기에는 이혼의 가장 나쁜 점이 그것이다. 그 모든 걸 다 끝낸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벽지와 그릇을 이미 골라놓았고 발코니 가구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고 아이들은 수영 강습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함께하는 삶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은행 강도는 모든 게 드디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시점에 다다랐었다. 그러니까, 황야로 내동댕이쳐져 원점에서 다시 자아를 찾으러 나서기에 알맞은 상태가 아니었다. 은행 강도는 이런 온갖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또다시 사라가 끼어들었다.

"요구를 해야 한다고요!"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 P241

결국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고, 그래 놓고 평생 이해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고 하셨거든요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321

현대사회와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옳다고 해서 논쟁에서 이길 거라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346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416

소녀는 자라서 딸을 낳았다. 원숭이 하나, 개구리 하나를 낳았다. 그녀는 설명서 없이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좋은 아내, 좋은 직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매일 매 순간 실패를 두려워했지만 얼마 동안은 모든 게 잘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상당히 잘되고 있다고. 그래서 긴장을 풀었고 무방비 상태였기에 불륜과 이혼에 심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인생에 케이오당했다. 살다 보면 거의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 여러분도 그럴지 모른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417

엄마는 아이들이 틀렸을 때 인정할 줄 알고 남이 틀렸을 때 이해할 줄 아는 것을 보니 그녀와 아이 아빠가 적어도 한 가지는 제대로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418

어른들의 실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은행을 털려고 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변명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도 가끔 정말 형편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을지 모른다. 한 번 더 기회를 누려 마땅했던 적이 있었을지 모른다. 남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419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사건의 진실. 진실은 이것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정말이다. 어른이 되고 서로 사랑하며 USB 단자를 어떻게 꽂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꼭 붙잡을 수 있는 것, 싸워서 지킬 것, 손꼽아 기다릴 것을 찾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친다. 모두가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다수는 타인으로 남고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삶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모르고 지낸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 인파 속에서 허둥지둥 엇갈려 지나갔지만 서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당신이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가 내가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를 스친 순간 서로 멀어졌을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거든, 오늘 하루가 끝나고 밤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심호흡을 한 번 하기 바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지 않은가.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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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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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러브스토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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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개정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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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담긴 초기작품집을 후기(?)작품들을 읽고 만나는 것도 흥미로웠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김연수 작가의 단어 사용은 다 알고 쓰는 것일까 그런 뜻의 낯선 단어를 찾고 찾은 결과 일까는 참으로 궁금하다.

공정하게 한가운데를 달린다고 했을 때, 예감은 좋은 일과 나쁜 일 중 나쁜 일 쪽으로 곧잘 쓰러지곤 했다. 추억이 곧잘 좋은 일 쪽으로만 내달리는 것과는 참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러므로 삶이란 추억으로만 얘기하는 게 좋겠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중에서 - P86

사랑은 왜 두려움과 함께 오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됐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아름다운 사랑은 망가져버리니까. 그리고 다시는 그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없으니까. 그게 사랑이라면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첫사랑> 중에서

세상에 어떤 동물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일부러 부수지는 않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 (그렇게 망가지는 꼴을 보니 신이 났어.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드디어 복수했다고 생각했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첫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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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지 않는다는 말 (개정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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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과연 이기지 않는 것은 패배를 뜻하는 것일까?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 P9

세상이란 초등학생들의 기대처럼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나쁜 사람들은 여전히 나쁘고, 강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자란다는 건 내일의 세계가 오늘의 세계보다 더 나아진다는 걸 믿는 일일 텐데, 세상이 이 모양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라기가 좀 힘들어진다.


‘이 세상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상태로 그냥 존재하는 거야. 존재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좋다고 말해서도, 나쁘다고 말해서도 안 돼.’ 그래서 경전을 들춰 보면 이런 말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웬만큼 살아 보니, 경전의 말씀들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 P19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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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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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재 찾기는 경이로웠고 스토리 텔링은 뒤로갈수록 아픔으로 옥죄어 왔다. 예전에는 이런 배경의 소설이 그저 지나간 역사속 아픔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뭔가 나에게 일어날수도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느순간 나도모르게 박탈당하고도 그런줄 모른채로 표현의, 생활의 자유를 맘껏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졌다고나 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그렇게 양자택일만 남아 있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을까?"

기행이 물었다.

"우리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됐지. 제3의 길이란 없다는 것."

"그럼 지금 자네는 시바이를 하고 있는 건가?"

기행이 다시 물었다.

"내게는 번역이 시바이의 길이네. 몇 년 전까지는 자네도 마찬가지였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거야? 난 언제나 그게 궁금했어."

준이 물었다. 취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러게. 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혼잣말처럼 기행이 말했다. 그건 어쩌면 불행 때문일지도 몰랐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28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81

달빛은 어찌 이리도 밝은 것인가?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달빛은 어찌 이리도 고운 것일까?

"그때 나는 한 사람도 살지 않는 세상을 상상했다네. 제일 먼저는 사막이나 바다, 혹은 북극과 남극처럼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생각하다가 그다음에는 송전처럼 외진 마을을, 그다음으로는 또 서울이나 평양처럼 큰 도시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풍경을 떠올렸지.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그때에도 보름이면 이 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 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에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오호, 우리의 태양이시여, 영원한 달님이시여, 라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77

"그러니까, 완전한 패배 말이에요."

기행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승리만을 봤기 때문이었다.

승리와 패배가 같은 걸 일컫는 다른 말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전쟁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행은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어떨까? 그러나 마흔이 지나자 죽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으므로 그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정주로 피난을 갔다. 고향 인근에서 숨어 지내며 그는 평화에 대한 시를 번역했다. 불붙은 산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지옥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05

누군가의 명백한 악의마저도 자기 운명의 일부로 여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23

새 공화국의 젊은 시인들은 기행의 시가 낡은 미학적 잔재에 빠져 부르주아적 개인 취미로 흐른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기행에게 어렵게 쓰지 말라고, 개성을 발휘하지 말라고, 문체에 공을 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46

"숲이 비어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고, 폐허가 꽉 차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지요. 저는 모든 폐허에서 한때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47

괴링이 이끄는 독일 폭격기가 육백 대나 날아와 포탄을 쏟아부었을 때, 스탈린그라드는 영원히 불타는 줄 알았어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죠. 밤은 낮처럼, 낮은 밤처럼. 물은 불처럼, 불은 물처럼. 악은 선이 되고, 선은 악이 됐죠. 그게 바로 전쟁, 지옥의 풍경이에요. 그렇게 몇 달 뒤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불이 꺼졌을 때, 도시는 완전한 폐허가 됐죠. 그 폐허를 응시하는 일이 시인의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벨라가 말했다.

"나는 1924년에 세상에 태어났고, 그 세상에는 늘 나보다 먼저 죽는 것들이 있었어요. 내게 전쟁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었어요.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48

신들은 사람들에게 괴로운 시름을 보낸다. 사실 신들은 악에 선을 섞어놓았지만 그러나 역시 악이 더 많아서 그 어디서나 이 악이 판을 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버이들을 공경할 줄 모르며 벗은 벗에게 신의가 없다. 길손은 환대를 만나지 못하며 형제들 사이에는 사랑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은 한번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으며 진실과 선행을 높이 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성시를 무너뜨린다. 그 어디서나 폭력이 지배하며 교만과 힘이 높이 쳐진다. 양심과 공평한 심판의 여신들은 사람들을 버리고 말았다. 이 여신들은 하얀 옷을 입고 불사신인 신들을 향하여 높고 높은 올림포스로 날아 올라가고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거북한 불행만이 남았다. 이리하여 사람들에게는 악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이 되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53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두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사랑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미움이 있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서로 붙은 한몸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때였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65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쓰고 나니 비로소 기행은 살 것 같았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84

"왜 그랬답니까?"

끔찍한 말들을 듣다가 기행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자 영감들이 혀를 찼다.

"이 아바이, 인생 헛살았네. ‘왜?’라는 건 소학교에서나 모르는 게 있을 때 손들고 선생님한테 묻는 거지, 인간사에다 대고 왜가 어딨어?"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88

어른들에겐 타인의 불행과 병만큼 재미난 장난감이 없었다. 그게 무쇠 세기를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88

언어는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 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191

그는 그 붓으로 세상의 권력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고, 그때는 기행도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들이 언어를 쓴다고만 생각했지, 자신들 역시 언어에 의해 쓰이는 운명이라는 것을 모를 때의 일이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211

결국 아무런 구원이 되지 못한, 그 연약하고 순수한 말들을.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P211

그토록 강요받던 찬양시를 마침내 쓰는 마음과, 그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매고 다녔다.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의 말 중에서 - P219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의 말 중에서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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