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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비엔나)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들의 심각한 오류들 때문에 읽는 도중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저자의 상상력 외에는 아무 근거 없는 주장들이 여러 군데 있다. 이 글 본문 아래에 내가 발견한 역사 관련 서술의 오류들을 모아놓았다. 도중에는 검토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내가 발견하지 못한 오류도 다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책에 독일어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거의 본문의 절반은 독일어 단어고 나머지 절반이 한국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독일어로 된 지명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딱 한 군데 시종일관 영어식으로 표기해놓은 곳이 있다. 빈은 시종일관 비엔나로 표기해놓았다. 반면, 저자가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했음에도 독일어에 오타가 굉장히 많다.

또, 보헤미아인 이름을 독일식으로 표기하고, 오스트리아인 이름을 영어식으로 표기하고,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하드리아노 황제라고 표기하는 등 인명 표기에 일관성이 없고 자기 내키는대로 표기하였다. 심지어 또, 빈의 지명 역시 어떤 곳은 독일어로 표기하고 어떤 곳은 영어로 표기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의 영어식 표기인 스티리아(Styria)를 독일식으로 읽어 슈티리아라고 표기하고, 에른스트(Ernst)의 영어식 표기인 어니스트(Ernest)를 독일식으로 읽어 에르네스트라고 표기하는 등 이게 독일어인지 영어인지도 알쏭달쏭한 표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장소들은 모두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는 소위 유서가 깊은 장소들이며, 저자의 의견처럼 빈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볼만한 장소들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역사 오류와 표기 오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잘못된 지식을 알아가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책을 출판할 때에는 최소한의 검수는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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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역사 서술 오류들이다.

1. 루돌프 1세가 보헤미아의 오토카르 2세를 퇴치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및 오스트리아 대공에 올랐다고 서술되어 있다.

> 루돌프 1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위를 세습하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몰락하고 황위가 오랫동안 비어 있는 틈을 타 결혼 동맹을 통해 어부지리로 황위에 올랐다. 오토카르와 전쟁을 벌인 것은 그 뒤이며 그 당시에 오스트리아에는 대공위가 없었다.

2. 레오폴트 4세는 합스부르크의 위상을 드높이자는 주장을 했고, 그의 동생인 에른스트는 ‘우리는 신성로마제국의 충실한 신하일 뿐이다‘ 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서술되어 있다.

> 레오폴트 4세와 에른스트는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5세(훗날 독일 왕 알브레히트 2세가 됨)의 후견인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였으며, 지기스문트의 중재로 둘이 같이 후견인을 했다.

> 웃기는 점은 책 뒷부분에서는 그들이 후견인 자리를 놓고 싸웠다는 서술이 제대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책을 엮는 사람이 글을 검토하지도 않고 출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레오폴트 4세와 에른스트의 내전, 알브레히트 2세의 즉위 이후로 빈이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된 데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다. 알브레히트 2세 이후로 합스부르크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위를 세습하게 되고, 따라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인 빈이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4. 1927년 대법원이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손잡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결정하자 사회주의자들이 시위, 폭동을 일으켰다고 서술되어 있다.

> 이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시위가 촉발된 것은 전선투쟁연맹(Frontkämpfervereinigung)이라는 우익 단체의 단원이 8살짜리 아이와 퇴역 군인을 쏴죽인 사건이 무죄로 판결되면서였다.

5. 돌푸스 수상은 나치당과 공산당과 좌익이 연합한 공화국수호연맹의 활동을 금지하고 이어 1934년에는 사회민주당의 활동까지도 금지했다. 라고 서술되어 있다.

> 공화수호동맹(Republikanischer Schutzbund)는 사회민주당이 조직한 준군사조직이지, 사회민주당과 별개의 단체가 아니다.

6.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실어놓았다. 이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전기 작가의 주장 외에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어떤 이야기는 그저 소문으로 치부하는 한편, 어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사실인 양 실어놓았다.

7. 신성 로마 제국의 궁정 유대인 사무엘 오펜하이머의 집이 약탈당했을 때 그는 명예와 신용이 추락되었고 결국 파산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 그는 살아있는 동안 파산하지 않았다. 신성 로마 제국은 오펜하이머로부터 많은 돈을 빌렸는데, 그가 죽자 그 빚을 갚는 대신 그를 파산시킨 것이다.

8. 성 요한 네포무크의 순교 장면을 표현한 조각에 이 사람들은 성 요한 네포무크를 순교자로 만든 로마 병사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 저자가 이들은 벤체스라스 왕의 병사들이므로 로마 병사들은 아니라고 반박하는 구절이 있다.

> 벤체스라스 왕은 당시의 독일왕(로마왕) 벤첼을 말한다. 당시 네포무크의 성 요한을 죽인 이들은 벤첼의 명령을 받은 신성 로마 제국의 병사들이었고, 조각의 설명은 이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반면 저자는 이들이 로마 병사들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지적이다. 이들이 로마 제국의 적통인 동로마 제국의 병사들이 아니라, 가짜 로마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의 병사들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들이 신성 로마 제국의 병사들이 아니었다는 잘못된 지식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그 뒤로 설명이 없으니 독자로서 답답할 노릇이다.

9. 멕시코 제2제국가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멕시코 제2제국은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안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세운 괴뢰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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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한 때 글렌 굴드에 열광했었다. 4년 전 쯤이었나? 바흐, 베토벤은 물론이고 겁나 파격적인 해석의 모차르트 소나타까지 글렌의 연주로 듣던 때가 있었다. 이 책도 그 때 쯤 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 작가의 이름은 모른 채로, 글렌 굴드가 등장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 책을 골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다.

언젠가는 읽을 책이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을 읽은 게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책이다. 나 역시 소설에서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읽는 걸 즐기지만, 이 책은 너무 그것에 집착하는 한편, 했던 말이 너무나도 많이 반복돼서 읽다보면 짜증이 날 정도다.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했었지, 나는 생각했다.‘, ‘였었지, 나는 말이 떠올랐다.‘ 로 끝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가독성을 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장(章)의 구분은 커녕 문단의 구분조차 없으며, 어떤 부분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구절을 찾으려면 거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뒤져봐야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의식의 흐름‘ 기법의 대표적 작가인 이상(李箱)의 작품보다는 읽기 편했다. 이상의 작품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 읽기 불편한 작품들을 해석하고, 그에 관한 문제들까지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 문제가 수능에 나오나? 그런 짓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이상의 작품은 우리 말로 쓰였음에도 어려운 단어도 많고 읽기 불편하다. 시는 당췌 뭔 소린지 알아먹지도 못할 정도다. 나는 읽기 쉬운 글을 좋아한다. 때문에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난해한 문체로 쓰인 그의 작품을 좋아할 수가 없다. 그의 작품을 명작이라 칭송하는 사람들, 교과서에 싣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원래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조차 혐오했었는데, 이 작품 덕분에 ‘의식의 흐름‘으로 쓰인 작품이 마냥 난해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번역자 분이 많이 고생하신 덕택일지도 모르겠다.

뒤에 첨부된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에는 ‘아리아‘라는 단어가 2번,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라는 단어가 32번 등장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접한 글렌 굴드에 관한 작품은 32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는 작품이 많았다. ‘미셸 슈나이더‘가 쓴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도 3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프랑소와 지라르 감독)라는 다큐멘터리도 그렇다. 글렌 굴드에 관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작품 안에 32를 집어넣어야만 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되는 걸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작품의 팬들은 뭐든지 42와 관련시키려 한다던데, 이와도 닮은 것 같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2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아리아‘ 단어 2번, ‘골트베르크 변주곡‘ 단어 30번이 등장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도중에 화자가 글렌이 녹음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1950년대와 해석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정황상 1982년에 발매된 음반을 듣는 것 같은데, 글렌은 훗날 인터뷰에서 1955년의 연주는 너무 빨랐고 꾸밈이 있었으며, 지금은 골트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그 당시와는 다른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의 내용은 다른 굴드에 관한 책에서 읽은 내용이며 직접 인터뷰를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출판된 책에 쓰인 내용이니 신빙성은 있는 편이며 만약 이게 맞다면 화자는 굴드의 절친이고, 피아노의 대가이면서도 글렌의 연주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는 모순이 생긴다. 또, 화자는 대중들이 모르는 글렌의 모습을 자신은 온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 글의 저자도 분명 글렌에 대해서 기껏해야 대중들만큼 알고 있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약간 웃기는 장면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부자들로 설정되어 있다.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 봤을 때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좌절하고, 절망하며, 자살까지 해버린다. 작품 내에 나같은 서민을 대변하는 ‘여관 주인‘이 나와서 이런 웃기는 일을 보고 한 소리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여관 주인은 지저분하고도 음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나는 예술가들이 어떤 세계를 사는지 모른다. 피아노를 치든 그림을 그리든, 예술 쪽으로 가려면 집안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상식이다. 솔직히 나도 이 글을 읽으며 내 입장에선 별 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주인공들이 절망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예술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남한테 기기도 하면서 하기도 싫은 일을 하며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예술의 벽에 좌절해서 자살까지 해버리는 건 부자의 오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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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허리 - 허리 보증 기간을 100년으로 늘리는 방법
정선근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랑 비슷하게 허리 디스크로 고통받고 있는 아는 공무원 분이 빌려주셔서 읽었다. 본문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1권을 다 읽는데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용도 단순한 편이다. ‘평소에 허리를 활 모양으로 펴는 습관을 들여라‘,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은 웬만하면 하지마라‘, ‘맥켄지 운동(McKenzie Method)을 해라‘가 주 내용이고, 나머지는 그 내용의 부연 설명과 연구 결과 등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허리 디스크 치료법은 제법 파격적이다. 도수 치료, 추나 요법, 침 등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허리 운동도 허리에 통증이 오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절대 안정‘ 만이 유일한 허리 디스크 치료법이며, 통증이 너무 심하면 스테로이드 주사는 맞으라는 게 이 책을 쓰신 분의 주장이다. 물리치료사가 들으면 환장할 지도 모를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거의 매주 정형외과를 방문해서 물리 치료를 받았었는데, 이 책을 읽은 뒤로는 물리 치료 받는 건 그만 두고 허리를 펴는데 신경을 기울였다. 그 뒤로 허리 통증이 아예 없어지진 않았지만 확 줄었다. 이 책을 진작 읽었으면 병가를 좀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단점은 본문의 양에 비해 책값이 제법 비싸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빌려서 읽기보다는 소장해서 생각날 때마다 읽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책은 비싸기도 할 뿐더러 이 책의 주요 주장은 머릿속에 각인돼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굳이 사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또, 이 책을 쓰신 분은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얼마든지 책에 쓰인 내용과 거의 같은 주제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텍스트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이 분의 강의를 듣는 게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무료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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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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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식의 서술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글들이 다소 산만한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근현대에 자주 보이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난해한 글들보다는 훨씬 간결하고 내용 전달이 잘 되었다. 무려 4000년 전에 쓰여진 서사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문학이야 당연히 읽기 쉽게 쓰여진 글이 제일이고, 나는 문학 역시 읽기 쉬운 문체를 선호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길가메쉬의 조상 우트나피쉬팀(아트라하시스)의 ‘대홍수와 방주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아, 그리스 신화와 히브리 신화에 나오는 방주 이야기는 여기서 모티프를 가져왔구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홍수 신화는 동서양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 (심지어 아메리카 신화에서까지) 전해져 왔다고 한다. 그럼 메소포타미아 신화, 혹은 그 원전이 되는 신화가 동양, 서양, 신대륙으로까지 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별 접점도 없었던 문명들이 어떻게 ‘신이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들을 쓸어버린다는 공통점을 가진 대홍수 신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에 길가메쉬는 불로초를 찾아내지만, 불로초를 뽑자마자 뱀이 훔쳐 먹어버리고, 결국 죽음을 맞으며 서사시가 끝이 난다. 이는 영원한 삶과 뱀을 다룬다는 점에서 성경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와 흡사하다. 또, 길가메쉬를 유혹하는 여신 인안나(이슈타르)는 성경에서 아스타롯이라는 이름으로 이교도의 여신으로서 등장하기도 하며, 악마학에서는 악마로 취급받기도 한다. ‘불로초와 뱀의 이야기‘, ‘여신 이슈타르‘, 그리고 위의 ‘대홍수와 방주 이야기‘, 이 세 가지 요소는 히브리 신화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히브리 신화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으리라 추측한다.

중간중간에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에 대한 설명과 당시 유물의 사진 등이 첨부되어 있어서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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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독일어로 쓰인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니만큼 번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0년에 출판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가 간혹 보인다. 덕분에 컴퓨터에 국어사전을 띄워놓고 50번 정도 검색을 하면서 이 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번역자께서 많은 독일어 단어들을 현지화해서 번역해놓으셨는데, 그냥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쓰고 각주를 달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대전선사(大典膳司) 같은 경우에는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뭔지 알았고, 로또를 봤을 때는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2부에서 그리스 신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별명, 그리스 이름, 로마 이름 등이 마구 뒤섞여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이 약간이나마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대단히 헷갈렸을 것 같다. 각주에 포르키스(Phorkys)가 포르키아스(Phorkyads)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다.(포르키스는 포르키아스들의 아버지이다)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서 포르키아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했다.

문장들에 너무 시적 표현과 추상적 표현들이 많아 글의 내용이 잘 안 와닿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시는 잘 안 읽을 뿐더러, 200여년 전 신성 로마 제국에서 쓰이던 표현을 번역된 글로 읽는 것이니, 안 와닿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나 역시 괴테가 쓴 시들을 읽으며 감상에 빠지고 싶지만, 번역본을 읽으면서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독일어를 공부하는 수 말곤 없지 싶다. 문학은, 특히 시는, 그 나라 언어로 읽어야 그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또, 철학에서 쓰이는 용어가 간혹 나와서 그걸 찾아보느라 독서를 잠시 중단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철학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파우스트는 비극 1부와 비극 2부로 구성되어 있지만(작가가 직접 붙인 부제이다), 난 솔직히 읽으면서 이게 비극이 맞나 싶었다. 그레트헨은 고의가 아니긴 했지만 자기 모친을 죽였으며, 고의로 자기 자식을 죽였지만 결국엔 구원받는다. 또,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했으며, 순진한 처녀를 꾀어 죄인으로 만들었음에도 마지막엔 구원받는다. 이쯤 가면 거의 100년동안 파우스트의 노예로 일한 메피스토펠레스가 불쌍할 지경이다. 모티프가 된 성경의 욥기에서는 하느님이 사탄을 부추겨 욥의 재산을 빼앗고 자식들까지 전부 죽여놓고도 그냥 하느님의 뜻이니 받아들이라 하는 것과는 참 대조적이다. 이런 죄인들이 마지막에는 구원받으니, 비극이라 부를 수 있긴 하겠다. 현대로 치면 극악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받는 건 희극이랑 비극 중 따지자면 비극 아니겠는가.

비극 2부에서 파우스트는 황제 앞에서 마술을 부리기도 하며, 악마의 힘을 빌어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얻는다. 또, 고대 그리스의 절세미녀 헬레네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기도 하며, 또 다시 악마의 힘을 빌어 위기에 빠진 황제를 구원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영지를 거느린 영주가 된다. 요즘 일본에서는, 주인공이 초자연적인 힘을 얻어 이세계(異世界)로 전이해서 용사로서 전쟁에 참가하거나, 절세미녀와 결혼하거나 하는 부류의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류의 매체들의 원전이 바로 이 파우스트구나 싶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그리스 문명을 선망했다고 하던데, 지금 일본인들이 현실로부터 도피라도 하고 싶은 듯 이세계 전이 소설에 열광하듯이 그들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너무 나갔나?

이 책의 번역자께서는 해설 부분에서 이 책을 ‘구원의 책‘이라고 일컫는다. 파우스트의 비극을 읽고 느낌으로써 삶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그처럼 예찬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이전부터 죄를 저질러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교리가 비도덕적이라 생각해왔으며, 현대의 관용주의적 법 체계도 증오한다. 헌데, 이 책에서 파우스트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는데 구원받아 천국에 가지 않는가?

번역자께서 작성하신 해설에 따르면 파우스트는 ‘이승의 끊임없는 노력과 능동적 행위‘, ‘저승에서 관여해온 수동적인 사랑과 은총‘을 근본으로 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자신의 개인적 야망인 간척 사업을 위해 노력을 해왔을 뿐, 그마저도 악마의 힘을 빌렸으며 그 과정에서 노부부를 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노력이 구원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노력이 그레트헨을 미치게 하고, 죽게 한 죄와 노부부를 죽게 한 죄를 상쇄하고도 남는단 말인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정도의 중죄를 지었다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고,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동안 그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고 정의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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