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독일어로 쓰인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니만큼 번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0년에 출판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가 간혹 보인다. 덕분에 컴퓨터에 국어사전을 띄워놓고 50번 정도 검색을 하면서 이 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번역자께서 많은 독일어 단어들을 현지화해서 번역해놓으셨는데, 그냥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쓰고 각주를 달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대전선사(大典膳司) 같은 경우에는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뭔지 알았고, 로또를 봤을 때는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2부에서 그리스 신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별명, 그리스 이름, 로마 이름 등이 마구 뒤섞여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이 약간이나마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대단히 헷갈렸을 것 같다. 각주에 포르키스(Phorkys)가 포르키아스(Phorkyads)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다.(포르키스는 포르키아스들의 아버지이다)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서 포르키아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했다.

문장들에 너무 시적 표현과 추상적 표현들이 많아 글의 내용이 잘 안 와닿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시는 잘 안 읽을 뿐더러, 200여년 전 신성 로마 제국에서 쓰이던 표현을 번역된 글로 읽는 것이니, 안 와닿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나 역시 괴테가 쓴 시들을 읽으며 감상에 빠지고 싶지만, 번역본을 읽으면서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독일어를 공부하는 수 말곤 없지 싶다. 문학은, 특히 시는, 그 나라 언어로 읽어야 그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또, 철학에서 쓰이는 용어가 간혹 나와서 그걸 찾아보느라 독서를 잠시 중단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철학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파우스트는 비극 1부와 비극 2부로 구성되어 있지만(작가가 직접 붙인 부제이다), 난 솔직히 읽으면서 이게 비극이 맞나 싶었다. 그레트헨은 고의가 아니긴 했지만 자기 모친을 죽였으며, 고의로 자기 자식을 죽였지만 결국엔 구원받는다. 또,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했으며, 순진한 처녀를 꾀어 죄인으로 만들었음에도 마지막엔 구원받는다. 이쯤 가면 거의 100년동안 파우스트의 노예로 일한 메피스토펠레스가 불쌍할 지경이다. 모티프가 된 성경의 욥기에서는 하느님이 사탄을 부추겨 욥의 재산을 빼앗고 자식들까지 전부 죽여놓고도 그냥 하느님의 뜻이니 받아들이라 하는 것과는 참 대조적이다. 이런 죄인들이 마지막에는 구원받으니, 비극이라 부를 수 있긴 하겠다. 현대로 치면 극악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받는 건 희극이랑 비극 중 따지자면 비극 아니겠는가.

비극 2부에서 파우스트는 황제 앞에서 마술을 부리기도 하며, 악마의 힘을 빌어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얻는다. 또, 고대 그리스의 절세미녀 헬레네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기도 하며, 또 다시 악마의 힘을 빌어 위기에 빠진 황제를 구원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영지를 거느린 영주가 된다. 요즘 일본에서는, 주인공이 초자연적인 힘을 얻어 이세계(異世界)로 전이해서 용사로서 전쟁에 참가하거나, 절세미녀와 결혼하거나 하는 부류의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류의 매체들의 원전이 바로 이 파우스트구나 싶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그리스 문명을 선망했다고 하던데, 지금 일본인들이 현실로부터 도피라도 하고 싶은 듯 이세계 전이 소설에 열광하듯이 그들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너무 나갔나?

이 책의 번역자께서는 해설 부분에서 이 책을 ‘구원의 책‘이라고 일컫는다. 파우스트의 비극을 읽고 느낌으로써 삶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그처럼 예찬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이전부터 죄를 저질러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교리가 비도덕적이라 생각해왔으며, 현대의 관용주의적 법 체계도 증오한다. 헌데, 이 책에서 파우스트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는데 구원받아 천국에 가지 않는가?

번역자께서 작성하신 해설에 따르면 파우스트는 ‘이승의 끊임없는 노력과 능동적 행위‘, ‘저승에서 관여해온 수동적인 사랑과 은총‘을 근본으로 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자신의 개인적 야망인 간척 사업을 위해 노력을 해왔을 뿐, 그마저도 악마의 힘을 빌렸으며 그 과정에서 노부부를 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노력이 구원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노력이 그레트헨을 미치게 하고, 죽게 한 죄와 노부부를 죽게 한 죄를 상쇄하고도 남는단 말인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정도의 중죄를 지었다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고,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동안 그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고 정의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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