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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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 (p.194)

 

잔잔하고 조용한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표지다. 정미경의 소설을 잘 알지 못했는데 유작이라서 용기를 내봤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은 섬에서 버려진 소금창고를 도서관으로 만드는 정모와 고등학생 이우와 말 못하는 섬 소년 판도가 등장한다. 친구 연수의 딸이라서 무조건 데리고 있겠다고 했지만 정모는 이우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다. 이우는 바닷가를 돌아다다 판도의 도움을 받는다. 이우는 말 못하는 판도에게 자꾸만 자기 속마음을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조금씩 정모가 하는 일을 돕는다. 재미도 있고.

 

정모도 이우도 판도도 모두 아프다. 섬을 떠나 성공한 예술가 된 연수도. 정모는 시력을 잃어가고 이우는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섬에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특히 판도를 키운 이삐 할미가 좋았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우를 품는 할머니. 복잡한 도시를 떠나 멀리 남도의 한적한 섬에 살아도 좋겠다. 소설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유작이라서 그런지 책 말미에 남편의 글이 애틋하다. 덕분에 나는 잘 몰랐던 정현종 시인의 좋은 시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 거대한 입을 벌리고 검은  구름을 토해내는 것 같다. 그 틈 사이로 붉은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디선가 커다란 나무이파리가 휙휙 날아왔다. 창고 지붕들이 들썩거렸다. 갯벌의 풀들이 바닥을 쓸 듯 엎드렸다가 가볍게 일어나곤 했다. 바람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갯둑에 서 있는데 몸이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입고 있는 옷이 파닥파닥 소리를 내며 나부꼈다. 바다가 하얗게 일어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야.(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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