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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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아베코보, 민음사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는 곤충채집을 하려고 집을 떠난 한 남자의 실종에 관련한 이야기다. 제목만 보면 비디오대여점에 있을 법한 삼류에로영화 같기도 하다. 모래와 여자, 두 명사가 갖고 있는 건조함, 유동성, 대조적 이미지, 그래서 가볍게 읽으려 했건만 실존에 무게를 둔 만만치 않은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시지프’와 카프카적 알레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아마 전후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 하에 쓰여 진 작품이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읽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져 칸영화제에서 작품상까지 받았다니 책에서 영화적 감성을 느낀 게 전혀 생뚱맞은 건 아니었나 보다.

 학교선생인 니키 준페이는 곤충채집을 위해 며칠간의 일정으로 사막을 찾아간다. 그는 사구의 능선을 따라 걷다 하룻밤 쉴 곳을 찾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안내로 지상에서 족히 20미터는 내려가는 지하동굴 같은 집에 머무르게 된다. 새끼줄로 만들 사다리를 이용해 드나들 수 있는 이 집엔 서른전후의 ‘모래의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 여자는 오로지 모래를 퍼서 지상으로 올리는 일만 하면서 살고 있고 하룻밤이라고 생각했던 지하동굴 집에 수년간 머무르게 된다.

 곤충채집에 묘미는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니키 준페이는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이 곤충도감에 기록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실종을 연기하면서 이 세상의 부자유와 답답함을 회피하려 2박 3일 간의 휴가를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던 행위는 스스로를 ‘생명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땅에서 모질게 살아남은 곤충’이 되어 버린다. 

 니키 준페이는 모래 여자와의 싸움과 화해, 밀페된 공간 속에 갇혀버린 존재, 몇 차례 시도된 탈출의 좌절, 라디오 하나조차 없는 곳, 하루라도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래집 속에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자신을 변형시키면서 살아남는 사막 곤충처럼 절대적 단절과 모순에 방치된다. 하지만 모래에 순응하면서 마지막 탈출의 기회마저 뒤로 미루고 현실로부터 스스로 격리되는 삶을 선택하게 되고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슬며시 미궁 속에 몰아넣고 싶은 욕망에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떠난 2박 3일간의 휴가는 상황과 공간만 바뀌었을 뿐 뫼비우스 띠처럼 끊임없이 모래를 퍼내는 ‘일상’으로 회귀한다.

 일상은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처럼,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의 행위처럼 반복이며 기다림의 연속이다. 힘겹게 모래를 지상으로 퍼 올리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라고 실존의 의미를 부여하는 니키 준페이의 행적은 소설 말미에 실종된 후 7년간 소식이 없어 최종 사망처리되었다는 증명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이 소설은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고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꿈꾼 한 남자의 궤적을 통해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뫼비우스띠처럼 이 곳과 저 곳이 다르지 않으며 실존과 본질의 잣대가 흔들리는 오늘을 생각게 한다. 과연 우리는 이 곳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말고, 날이 밝으면 다시 나무 밑으로 가서 ‘고도’를 기다려야 해야 하는 건지, 사유의 사각지대로 자신을 실종시키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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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버스 2014-02-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공연되어 정보 공유합니다. 소설을 읽으신 분들께는 더욱 흥미로운 연극이 될 것 같아 댓글 남겨요.
공연정보는 한국공연예술센터 홈페이지 (www.hanpac.or.kr)에서 "모래의 여자"를 검색하시면 확인가능합니다.

연극 <모래의 여자>
2014.02.18-2014.02.23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전석 2만원
예매 바로가기 http://www.hanpac.or.kr/hanpac/program.do?tran=play_info_view&playNo=14012915412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