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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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류적 재앙이 이렇게 체감되는 시기가 지금껏 있었나. 코로나 덕분에 디스토피아 세계란 이런걸까 하고 조금 짐작해보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멸망이 우려되는 세계에 살았기 때문에 지금이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기에 적합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다 망해버리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중얼거리던 모루. 갑자기 사라진 이모를 찾아나서며 이월을 만나고 이모의 행방을 쫒던 둘은 녹지 않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세상을 따라 달려나간다.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길을 따랐지만 둘이 이 세계를 구하거나 구원받지 않아도, '가만히 기다리는 건 이제 못하는' 서로가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 둘이 설원을 달리는 과정이 많이 춥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과 응원이 느껴져 매우 찡했다.
 
 사실, 기후변화니 생물멸종이니 아직까지는 다수의 (그리고 나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크게 주고 있지는 않다. 관련 책을 읽을 때나 아 그렇지.. 하고 잠깐 떠오르는 정도지.. 지구는 서서히 멸망해가고, 인간은 이런 세계에서 꾸역꾸역 살아간다. 종말이란 이런걸까. 그것이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오고있음을 다시 생각하니 슬프고 우울해진다. 모루와 이월처럼,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필요하다.
 
 덧. 어느 정도는 국내 작가의 SF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많이 내려놓은 상황이어서 조금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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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혹에 넘어가면 우린 옛 지구의 사고방식대로 머리가 굳어 버린 400살 먹은 인간 패거리가 돼서 신세계에 발을 디딜 거야. 아이들한테 희생의 가치가 뭔지, 영웅적 행위는 뭐고 새로운 출발의 의미는 어떤 건지 무슨 수로 가르칠 거야? 그때 우린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존재가 돼 버렸을 텐데."
"우린 이 임무를 받아들인 순간에 이미 인간이 아니었어!" 매기는 잠시 입을 다물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현실을 똑바로 봐. 가족계획 알고리즘은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안중에 없어. 우린 그냥 계획에 따라 최적의 비율로 배합된 유전자를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실험관일 뿐이야. 당신 정말로 우리 후손들이 이 안에서 몇 대에 걸쳐 자라고 죽기를 바라는 거야? 이 좁아터진 금속 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내가 걱정하는 건 그 애들의 정신 건강이야."
"죽음은 우리 종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야." 주앙의 목소리는 신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매기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논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눈치챘다.
"죽어야만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근거 없는 통설이야." 매기는 남편을 돌아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그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팽창된 시간처럼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이.

외할아버지는 비정상적인 시대에 비정상적인 선택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때 일만으로 외할아버지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가 아니면, 도대체 언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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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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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탐방기'라는 겉표지를 쓰고 있어서 마냥 발랄할 것 같았다. 축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흥을 작가들의 문체로 경쾌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졌는데, 물론 기대한 부분에 대한 충족도 있지만 동시에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주제들을 건드리며 다중적인 시각으로 축제를 보게 해주었다.

첫 타자인 영산포 홍어축제부터 '왜 이런 축제를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소멸되어가는 도시(라기보다는 지자체)들의 현실에 스포트라이트를 던지고, 양양 연어축제에서는 연어의 펄떡거리는 생명력과 고향을 향하는 절박함과 대비되는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연관있는 것들을 그러모아 만들어진 축제 요소요소를 케이-스럽다며 까는 부분은 통쾌하지만(단 자국인만 할 수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잡다하고 서툰 흔적과 함께하려는 노력들이 소중하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지역에 대한 애정까지 싹트게 해주었다.

가장 큰 수확은 넘치는 케이-스러움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찾지 않았던 축제장들을 한번쯤 들여다 볼까? 싶어졌다는 것.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왠지 뭉클해져서 나도 어쩔수 없는 이쪽 편(?)이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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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거북 그림책이 참 좋아 15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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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참가하게 된 토끼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우연히? 이긴 거북이. 그 이후 달리기만 생각하며 폭삭 늙은 거북이의 모습이 바깥의 기대 때문에 무리하는 누군가들과 겹쳐보였다. 동화 속 거북이는 재경주에서 패배한 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속도와 압박이 필수요소인 사회 생활 중인 우리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숙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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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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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에 대한 깊은 사유들로 가득한 SF 단편집이었다. 이런 소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써먹었고 이미 신선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섣부른 판단일 뿐이었다.
소설은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렇다면 AI와 구별될 수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소설 중의 초인공지능들에 따르면 인간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더라도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 판단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분석하고 있는데, 비인간 존재들의 시선으로 인간을 비추면서 인간에 대해 더욱 큰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1 .당신은 어디에 있지- 누구나 한번쯤  '나 대신 로봇이 내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적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떠올려 본 적은 없었었다. 나와 동일한 사람으로 보이려면 당연히 시각적인 요소, 물성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손이며 얼굴이 나처럼 디스플레이 된다니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단지 디스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기계임을 아는건  나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나로 안다는 거니까.  AI가 한 개체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동일해 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소프트웨어 쪽이 더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하드웨어적인 구현도 못지 않게 어려울것 같은 느낌이다.

 

2. 영생 병원- 읽은 후 한방 맞은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은 오랫만이었다. 가장 맘에 들었던 편 중 하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이미  만약 몸의 모든 부분을 바꾼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원래의 그 사람일지. 작가는 어머니의 입으로 이렇게 말한다. '주변 사람들이 네가 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너무 강조하길래  주인공의 선택은 어떨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읽으며, 내 가족에 대입해서 생각해봐도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덧. 이 병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은 정말 주인공 뿐이었을까? 중국이 배경이라서 인지 왠지 이와 관련해서도 검열과 숙청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3. 사랑의 문제- 인공지능들이 '신'이 되었고 그들과 접속하는 곳이 만신전이 되었다. 이들에게 인간은 그저 통계수치에 지나지 않고 데이터를 얻는 실험 대상 일 뿐이다. 이런 가상의 커뮤니티가 정말 존재하고 인공지능들이 계속 악의적인 시도를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만을 파괴할까? 인간은 이 단편의 주인공 가족처럼 피해를 입을것이고 이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일까? 아니면 단순히 데이터캐리어로 봐서 오히려 무사할까?

 

4. 전차 안 인간- 짧은 단편이었지만 여기 등장하는 전차를 만든, 세계 최대 로봇 회사라는 '기계의 마음'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
이 회사는 자기들 회사에서 만드는 기계들에게 마음을 줄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계의 입장에서 산출해내는 값을 가지고 마치 기계처럼 서비스를 제공 하겠다는 의미인지?  기계에게 마음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단어 같다고 느꼈다.

 

5. 건곤과 알렉- 가장 맘에 들었던 편 중 하나.
다른 편들에 비해 명랑한 분위기였고 천진한 아이와 AI의 귀여운 실랑이?가 왠지 픽사 애니메이션을 한편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곤이 아이를 관찰하며 다는 주석의 내용들과, 기록마다 '이해하기 어려움'의 별표를 칠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알렉은 건곤과의 대화 도중 말그대로 어쩌다보니 굉장히 영예로운 '특별 공헌상'을 탔으나 아무런 보상도 없는 '좋은 친구 훈장'에만 관심을 보였고, 건곤이 답안 선택의 충동을 느끼는 장면은 인간과 AI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라는 희망을 담고 있는 듯 했다.

 

6. 인간의 섬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장 발전한 인공지능상을 그린다더니 드디어(!) 인간을 탄압하여 지배하려 드는 AI가 나왔다. 모든 것을 확률로 계산하는 인공지능과 그 낮은 확률을 뚫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대립을 그렸다. 어찌보면 뻔한 내용이라 올 것이 왔다는 느낌도.

 

작가는 '인공지능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인상적이다. 다른 종에 의한 파괴가 아닌 우리가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까 작가는 우려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상황을 구축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현실에서는 충분히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앞으로 살아나갈 아이들이 인공지능과 동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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