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


사람이 자기 일에 노력과 열심을 내는 이유가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안다면, 삶의 방식을 지금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 경쟁 대상은 언제가 반드시 사라질 것이며, 그 대열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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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4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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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야 하는 이유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가 나은 이유는 아직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서 9장 4절)

죽은 자는 절망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삶 자체가 죽음이요 절망이라고 말하는 그대들에게,

이제는 그대들의 생명을 주신 분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망망대해,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배는 별을 그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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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사기꾼


목사는 사기꾼이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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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

 

사람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다.

하늘을 보아도, 땅에 자라는 모든 생물들을 보아도 오묘한 절대자의 창조와 섭리,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누가 이 모든 것을 만들었고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 성서에도 분명히 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완전히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관계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은 노력하지만 전혀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고, 불완전한 지식과 한계로 헤맨다.

그러다 엉뚱하게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곧 자신이 신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신기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그를 추종하기도 하고, 생물, 사물을 신으로 섬기고 숭배하기도 한다.

직관을 믿으며 자기최면을 절대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인도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계시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신적 속성의 일부를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것은 자연계시에 속한다.

한 그루 나무에 기대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다, 각종 생명체와 온갖 군상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조물주의 편린을 더듬어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마다의 모습이 소중하고 신비하게 여겨져도 더 이상 하나님께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께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의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때만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인류의 첫 사람은 그 말씀을 알아듣고도 불순종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의 효력에 따라 인생에게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선지자 등을 통해 각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시대마다 함께 하신 것이다.

시대가 다르고 지은이가 달라도 인류를 구원할 목적으로 계시해 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인류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을 발견하고, 불완전한 삶이 완전과 영원을 향해 담대히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특별한 계시이다.

하나님께서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인류에게 주신 네비게이션이다.

내비의 음운이 히브리어 ‘나비’와 비슷하다.

히브리어의 ‘나비’(발음에 따라 ‘네비’)란 ‘선지자‘를 의미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시대마다 알려주어, 삶과 영원을 향해 방향 감각을 가지게 했다.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네비게이션과 히브리어의 ‘나비’는 언어학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길을 묻는 인생에게 중요한 ‘방향’을 선택해야할 때, 공히 결정적인 역할을 함에 틀림이 없다.

성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도록 하며 완전으로 나아가게 한다.

영원의 속성을 가지신 분과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에 이르도록 한다.

또한 혼란스러운 자신을 성서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동시에 진리와 함께 일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아 점차 확실히 이해하고 알아간다.

진리를 찾고 구하는 자. 자신을 사랑한다면, 성서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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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성령


성경 첫 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장 1~2절)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어 성경에서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을 한자(漢字)로 성령(聖靈)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요새 한국에서 스스로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할배들이 있다.

성령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할배가 성령이면 이 세상을 할배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는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면, 할배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며 날아 다녔다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쭈글탱이며, 하나님도 늙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말세에 세상을 현혹하는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성서에 예언되어 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기록한 글이다.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은 진리의 말씀, 성경은 신의 계시이며 이 말씀을 통해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

할배는 곧 세상을 떠야할 사람이지만, 성령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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