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루는 법


10대에 읽었던 글 중에 ‘분노’를 다룬 주제가 있었다.

수행 중이었던 한 제자가 “스승님. 제게 다루기 힘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스승은 “그것이 네 것이냐?”

제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러자 스승은 “네 것이 아니라면서 왜 갖고 있느냐? 버려라.”


제자는 화를 다스리는 것이 힘들었고 수행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화’ 자체가 자기에게 생기지 않거나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승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덕을 갖춘 이요, 성자‘ 라는 도식에서 스승은 명쾌한 대답을 하였다고 그 때는 생각했다.

그런데 20대 초, 성경적 관점에서 분노에 대한 주제를 다룰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에 대하여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오히려 편파적이고 통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역사에 분노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악(惡)이 횡횡할 때 침묵하는 것은 그것에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왕왕 있었다.

분노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그 감정을 조절하여 승화시킨 절제된 공분은 인류 역사를 발전시켰다.

분노는 문제의식이며, 오류 인식에 대한 공감이다.

의분은 정의의 기초이고 거룩한 분노는 자기 이해의 척도이자 공동체의 평화를 수호한다.

단, 분노의 가치와 양(量)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함부로 남발하는 것은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을 파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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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일, 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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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일, 하나


죄는 인간들끼리 저질러 놓고 원망은 하나님께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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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주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1) 라는 창조주의 음성을 들었을 때, 첫 사람은 이미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창조주로부터 일탈은 불안을 조성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불분명한 선택은 불안한 결과를 얻는 것뿐이다.2)

엄마 품속에 있던 영아들이 세상에 발을 디딜 때마다 뒤돌아보며 엄마를 확인하듯이, 하나님 품속을 떠난 인간은 분리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가 엄마의 품속에서 안정감을 되찾고자 하듯 인간의 구도(求道)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 엉겅퀴와 가시밭길에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불안한 인생, 엄마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토록 애타게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것은 자기만의 공간에 갇힌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일탈한 인간은 가까이 다가와 찾고 계시는 창조주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면 여전히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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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세기 3장 9절

2) 창세기3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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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바꾸다


사람은 과거에 살 수 없지만,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그 날에 과거의 향기를 음미할 것인지 여전히 악취에 괴로워할 것인지, 기회는 현재의 선택에 따라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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