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
앙투안 갈랑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

원제 : Letters à Thomas, mon fils handicapé

앙투안 갈랑 지음 /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지지난달, 긴 호흡으로 재미나게 읽으려고 구매한 『천일야화(전 6권)』를 엮은이가 앙투안 갈랑(1646~1715)이라는 프랑스의 동양학자였다. 이 책의 저자가 앙투안 갈랑이라 하니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둘은 동명이인일 뿐 전혀 다른 시대를 산 전혀 다른 사람이다. ㅎㅎ

 

부제나 간략한 책 소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마흔 살 장애 아들을 둔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편지 묶음이다. 당연히 장애를 지닌 아들은 내용을 읽을 수도 알 수도 없다. 다만,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는 있겠다. (그나마 장애아를 위한 시설이 우리보다는 알맞게 갖춰진 프랑스에서조차)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지. 그런데 나는 굳이 왜 독자들을 짜증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걸까?” (125~126쪽)

 

저명한 소아과 의사로서 숱하게 아픈 아이들을 보아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막내 아이가 생후 10개월경 기능 정지와 지각 구조 상실, 이후 간헐적인 간질 발작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장애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을 때... 막상 내 아이의 일로 다가왔을 때... 그때 후려친 시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다. 글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녹록한 과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너를 위해 우리의 생명이라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단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 그런데 우리가 가진 능력을 초월하여 너를 사랑해야만 했지. 그렇게 되자 네가 우리에게 고통만 주는 존재 같았단다. 내 자아가 비틀거리는 그런 중대한 국면에서, 남아 있는 것은 너를 위한 조그만 자리뿐이었어. (...) 고통이 우리 안에 빈자리를, 공백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을 팠단다.” (26쪽)

 

처음 마음과 달리 점점 지치고, 삶이 뒤죽박죽 엉키고, 놓아버릴 수 없는 죄책감에 슬픔과 혼란이 버무려지고 반죽되어서 부풀어 오를 즈음 아들을 시설에 맡기는 과정을 겪으며 점차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는 것만 같았다. 너무너무 혼란스럽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어떻게 해서든 곱게 곱게 갈아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아버지의 심정이 그간 독서 경험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문학적 필치로 빛났다.

 

언뜻 재미있게 여겨진 부분은 아내와 자신의 위기대처방법의 차이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부분이다. 아내는 아들의 장애를 거의 곧바로 정면으로 맞서 받아들이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그러면서도 너무 지나치지도 않은 정도로 변함없이 아들과 자기 삶을 유지시켰다. 그런데 남편인 자신은 오랫동안 아들의 장애를 선뜻 받아들이지도 확 떼어놓지도 못한 채 부인하고 회피하지만 아들의 결핍을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그렇지만 결코 한 몸이 될 수도 대신 겪어줄 수도 없는바 사람과 사람 사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처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네 엄마는 나의 태도에 화를 낸단다. 내가 몹시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기적이고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거야. 네 엄마는 내가 자아낸 실이 결국엔 나 자신을 조일 거라고 말했어.” (122쪽)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 얼마나 진하면서도 냉정한 사랑이 필요한지... 나는 그저 짐작만 해볼 뿐이다. 물론 통렬한 아픔 가운데 피어난 꽃이겠지만 이들 부부의 충만한 사랑이 너무나 부럽고 따스하다. 한편으로 아픈 손가락과 같이 찌릿찌릿하다. “편협한 신경쇠약 환자였던 스페인인 어머니(내 할머니!)가 주입시킨 죄책감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152쪽) 늘 읽고 쓰는 삶을 사셨던 할아버지를 닮아 저자인 앙투안 갈랑도 장애아를 키우며 늘 문학과 함께 읽고 쓰는 동안 노년을 맞이한 것 같은데, 그 가운데서도 ‘사랑과 고통, 슬픔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 분위기가 책 전반에 쫙 깔려 있어서 그 절절함이 그대로 가슴에 배어든다. “오직 사랑만이.”(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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