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인생 학교 -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질문
조현 지음 / 휴(休)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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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생 학교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질문)

조현 지음 / 휴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고, 최근에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스에 대한 관심도 쏠쏠하다. 그리스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이쪽에 관심을 두었던 분들이 쓴 그리스 관련 책들이 한 권, 두 권 늘어만 간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박경철 저),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구본형 저) 등. 그 틈바구니에서 만난 책이 바로 이 책 <그리스 인생 학교>이다. 제목으로 보나 뭐로 보나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머리 아프게 하지 않을 것 같고, 비교적 쉬어가는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책이다. 역시 이 책의 저자 조현 님이 오래도록 종교 분야 기자로 재직하며, 마음ㆍ영성ㆍ치유ㆍ봉사ㆍ공동체에 대한 기사를 써오셨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풀풀 나는 책이다. 그런데 말이다. 왜 이리 더디 읽히던지... 이건 순전히 책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다.

작년쯤 다른 건 몰라도 인문학 강의는 직접 가서 강의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들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에 추우나 더우나 열심히 다녀보았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실망이라고 해야 할지, 환멸이라고 해야 할지. 전방위 엔터테이너(연예인)도 아니고 최소한의 줏대는 가지고 학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깨고, 정말 죄송하지만 알량하다 싶을 정도로 온갖 분야를 기웃거리면서 가령 내가 “선생님께서는 그리스에 어떤 매력을 느끼신 건가요?”라는 가벼운(?) 질문을 던지자 ‘네가 내 수준을 알 것이냐’ 또는 ‘인문학은 너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거다’라는 간접교훈을 주듯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질문을 뭉개버리셨다. 이게 아마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점수에 맞춰 해당 학과에 들어간 학생에게 “너 그 학과에 왜 들어갔니?”라고 묻는 것과도 같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다. 또 다른 한 분은 작년 초, 강의 중 “상경계 공부는 1년 정도면 되지 않느냐”며 인문학 공부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터라 직접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몇 번 그분 강의를 들어보고는 생각이 싹 바뀌었다. 웅숭깊게 공부하는 사람은 다들 어디 숨어있기라도 하듯... 삶의 이완과 여유는 큰 맘 먹고 작정해야 얻을 수 있다는 듯 조현 님이 회사 안식월을 이용해 다녀온 그리스 여행기를 작정하고 보게 된 나는 벌써 그 어떤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돼버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작은 에게 해 바다에 둥둥 뜬 섬이나 다름없는 금녀 국 아토스 산이다. 그리스 신화를 전공하신 분과의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이 책을 보여드렸더니 아토스 산은 관심 밖이라며(ㅎㅎ 뒤쪽, 중간 사진 위주로 꼼꼼하게 훑어보시고는 106쪽의 ‘도마뱀(사진)이 혹시 도룡뇽 아닌가...’ 고개를 주억거리셔서 생각난 김에 집에 와서 도마뱀과 도룡뇽의 차이를 열심히 공부해 보니 정말 도룡뇽 같기도(?) 하다. 도마뱀은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고, 도룡뇽의 피부는 약간 미끌거리면서 촉촉한 것 같다는 점이 그 차이? 그 자리에 있던 여러 남자도 ‘여자 없는 아토스 산은 아니올시다.’라는 눈빛이 모아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ㅎㅎ 그래도 이곳이 한 위파사나 수행자가 최고의 안식처로 꼽은 곳이라고 하니 여자인 나는 이런 간접여행으로나마 그곳의 기운을 수혈 받아 볼 수밖에.

비교적 가벼운 힐링도서쯤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그리스 인생 학교>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토스 산을 시작으로 반시계방향으로 죽 둘러보는 고대 디온, 올림포스 산, 메테오라, 델포이, 스파르타, 아테네, 크레타, 산토리니, 코스, 파트모스, 사모스, 트로이까지. 각 장 끝머리에는 공부하는 기분으로 보면 좋을 그리스 관련 지식이 있어서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머리회전까지 시켜주는 1석 3조 음식을 맛본 듯했다. 기대했던 그리스의 매력까지 물씬 맛볼 수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를 자기 집에 초청했던 첫날밤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선생님은 괴물처럼 못생겼는데도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의 심장은 종교적 열광에 사로잡혔을 때보다 더 빨리 뛰고 얼굴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선생님의 (자애로운) 성격과 자제력과 용기를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37쪽)

 

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그렇다고 해서 ‘자기다움’까지 현자에게 넙죽 바치지 않으면서 - 이건 스승과 제자가 같이 노력해야 하는 것),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기꺼이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리스 사람들. 무지의 잠 속에 빠져 성찰의 등을 꺼버린 영혼들을 깨우는 시끄럽고 톡 쏘는 ‘신이 보낸 등에(gadfly)’ 소크라테스 선생님.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불안의 어둠에 갇혀 있고, 신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신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깨우쳐주기 위”(206쪽)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다는 디오게네스 선생님. ^^

철학적 의문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빛을 던져 주고 간 사라져 간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과 그들의 숨결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우리 가슴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텐데, 그 벅찬 숨결을 언제 어느 때 어느 만큼 들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인문학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가 인간 존중일진대 요즘은 어느 누구도 으스대지 않으면 사람을 알아주지 않으며, 기꺼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외롭다고 말한다. 나는 외로운 건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에 재주도 없고 여러 가지로 지치기도 해 ‘에라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내 마음을 잘 읽어주는 기특한 여자동생이 말한다. “언니, 일단 사람의 마음을 얻고 나서 원하는 걸 말하면 더 잘 들어주지요.” ^^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다. 보통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교주나 교사가 아니라 마음을 읽어주는 벗과 어머니 같은 연민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말한다.

“남에게 친절하라. 그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현재 그들의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245쪽)

 

우리 모두의 건승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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