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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유쾌한 창조〉
이어령 · 강창래 지음

↑인터뷰어 강창래가 인터뷰이 이어령과 몇 번의 만남, 대화를 나누고
관련 글을 많은 부분 발췌 · 인용하여
나름대로 이어령 유고집에 버금가는 정도로 열심히 정리하여 내놓은 책이다.
그동안 알마에서 출간한 인터뷰집이 이 책까지 꼭 여섯 권이다. 이건 내가 앞의 책들을 다 읽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한 권도 못 봤다. 이게 처음이다.) 이 책 뒷날개를 보고 안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세 줄 글이 적혀 있다.
내가 사는 시대, 다른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삶에 이르렀을까?
대화를 통해 동시대인의 삶, 일, 생각을 들어본다.
지금까지 출간한 인터뷰집의 의도 내지는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동시대인의 삶이 어떠한지, 그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어야 정상(?)일 것 같지만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핑계가 되겠지만 대학 전공이 그렇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새내기 직장인이었을 때는 윗사람이 명함에 박힌 상사로 보였을 뿐이지 그도 한때는 풋내기 대학생이나 말단직원이었을 거라는 구체적인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이건 자녀들이 자신의 부모도 한때는 10대, 20대였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지금 팔팔한 청춘들이 자신은 감히 30대? 40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과 같다고 봐주면 좋겠다. 그런 나에게 한 번은 국문학을 전공하신 중년 교수를 가까이서 오래 뵐 일이 있었다. 그전까지 내가 몸담고 있던 세계가 입력-출력이 비교적 정확한 과학적인 세계였다면 이후 새롭게 열린 두루뭉술 인문 세계의 빛은(과장 좀 했다! +.-) 내겐 너무 신선하기만 했다.
긴 잔말은 접고, 그때 이후로 내가 느낀 것은 4.19전후 시대를 살아내신 분들은 뭔가 감추는 게 많고 어떤 이유로 추종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추종하는 분이 꼭 한 분 이상씩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를 추종하도록 부추기고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됐으면 추종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추종할 텐데 이상한 작자들이다.) 그 세계를 전혀 모르고 살던 사람으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뭐, 아직도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그런 입김이 거센 것 같기도...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책을 50쪽 이상 읽어 나갈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잠정적으로 지니고 있던 4.19전후 세대 느낌이 들어서 책장을 더 넘겨 말아 고민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 그때쯤 아래 글을 보고 마음을 조금 열어놓고 읽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경배와 찬양' 같은 낱말을 떠올리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이어령의 책을 읽으면서, 만나러 다니면서 늘 고민했다. 놀라운 글(말)솜씨 속에 녹아 있는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 구조에 설득당하는 것이 싫었다." (64쪽)
지금이야 일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 워낙 많은 직함과 이력, 수식어를 달고 계신 분인지라 이어령이라는 분에 대한 인터뷰집을 어떻게 열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 과장해서 말하면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고민됐을 것이다. 이런 인터뷰어의 감정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 인터뷰집으로 초반 거의 절반 가까운 분량은 '1950년대 문학비평의 주인공 이어령'을 둘러싼 4.19전후 시대 문학비평과 논란·논쟁거리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어령/김수영의 불온성(시) 논쟁' 원문을 통째로 실은 점은 출판사나 읽어내는 독자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원문은 한자가 꽤 많이 섞인 기사들이고 내용도 문학권력 근처를 기웃거리기라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해석하거나 자기 의견을 또렷하게 내기가 무척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므로 고딩 때 사설 분석했던 기분을 내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만 우선 밝히고 싶다. 이후 《디지로그》라는 책에서도 얼핏 내비쳤을 창조 공간, 그레이존에 대한 이야기와 역시 최근작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더 상세하게 다루었을 종교인으로서 변화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마지막은 죽음을 준비하며 수의를 마련하는 마음으로 벌인 세 가지 실패할 것이 뻔한 일-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학교', '한국인 이야기' - 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짓는다. 글쎄... 개인적으로 몇 다리 건너라도 알 수 있는 분도 아니고 100m 근방에서 뵌 적도 뵐 수 있는 분도 아닌 분에 대해서 내가 뭘 알 수 있을까마는 권력이나 세대차라는 눈곱을 떼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만나서 동시대인과 소통하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기 위해 한 번쯤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실 그 자체를 알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애쓴다면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다." (302쪽)
나에게 의외의 재미와 감동을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