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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노후력
와시다 고야타 지음, 김정화 옮김 / 와우라이프 / 2010년 1월
평점 :
<남자의 노후력>
중년들이여! 불평하지 마라!
돌파구는 여기 있다!
'정년의 남자를 위한 교과서' - 이 책표지에
이 책에서 저자 와시다 고야타는 인간의 생애(生涯)를 이렇게 보았다.
소년기=0~20살, 중년기=21~60살, 노년기=61살 이상(초로(初老)=61~70살, 중로(中老)=71~80살, 고로(古老)=81살 이상)로 일단 구분해 본다. 이것은 '평균치'이다. 개인에 따라 실제로 늙어가는 정도는 크게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구분이다. (241쪽)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위의 구분에서 중년기는 청년기(20·30대)와 중·장년기(40·50대)로 다시 세분해서 나눠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남자들은 중년기와 노년기, 두 번에 걸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것 같다. 먼저, 중년기인 40대에 들어서면 "내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이 뭐가 있지?" 내지는 자기 실력이나 주제는 생각하지 않고 막연하게 일정 이상 지위나 명예를 지니고 싶다는 야욕에 불타서 몹시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제 죽음과 가깝기도 한 노년이 남았다. 아무리 수명이 늘었다고 하지만 대체로 60세에 들어서면 노년이라고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이에 크게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정년퇴직을 경험한 바 있으며 60대도 한참 지난 60대 후반의 나이(1942년생)에도 일을 꽤 열심히 하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이즈음 자신이 이미 거쳐왔던 노년의 곤혹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노후(=퇴직 후)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을 이 시대의 남자들을 위해서 "(으랏차차!!) 노후력을 보여-줍-시-다!!"라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하셨을 거라고 믿고 싶다. 목차를 주욱 살펴보면서 언뜻 이 시대의 지치고 불안한 노년에게 큰 힘(力)을 전해주는 책이 될 거라 믿었으니까. 또한, 자기계발서류를 보게 될 때 대개 그렇듯 현실적인 조언도 어느 정도는 기대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아 이런 글들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의아했다.
"인간을 말(언어)의 존재로 파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론의 근본이며 내가 노인론(老人論)을 중요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0쪽)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의식(자기의식=사유=정신)이 있다는 거고, 이 의식은 '언어(말)'가 있어서 가능하다는데 그거랑 노인론이랑 무슨 관계지?
"노인에게 '야심을 가져라'라니, 무슨 쌩뚱맞은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심'이란 '세속적 성공'과 관련되지만, 생뚱한 것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35쪽)
'뭐지?'
죄송한 얘기지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의 앞날개를 보고 나서 쉽게 풀릴 수 있었다.
와시다 고야타
오사카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철학, 윤리학으로 교편을 잡았다. 저서로는 『신 대학교수되는 방법』 『처음 하는 철학사 강의』 『철학을 알 수 있는 사전』 『노후에 대비하지 않는 신 철학』 『인생의 철학』 등.
자기 줏대도 없이 갈팡질팡 흔들흔들 난리도 아닌 이 시대에 철학을 배우는 것은 분명 굉장히 유익하고도 유익한 일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간혹, 정말 아주 간혹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철학과 학생을 만나볼 수 있다. 와시다 고야타라는 분도 약간 그 비슷한 느낌이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년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단호한 레이저를 쏘고, 죽을 때까지 일을 하라고 채찍질 아닌 채찍질을 하신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후력(力)은 바로 "일을 하라. 일을 멈추지 마라"라고,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쁘지는 않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라는 게 꼭 돈을 벌자는 일만은 아니니까.
전반적으로,
황비홍 못지않은 취권을 구사하시며-그 연세에도 최신 발명품에 굉장히 관대하시다(텔레비전, 핸드폰,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라고 함)-일본 특유의 개방적인 성(性) 개념을 지니신 분으로서 나와는 사고방식이 대단히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거 하나는 건졌다고 해야 내 마음이, 책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자식한테 신세지는 것은 당연한 일
"절대 자식들한테 신세지지는 않을 테야"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무섭기도 하고 상당히 무모하게 들린다.
(...)
부모가 자식을 돌봐주는 것은 '의무'이고, 자식이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권리'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신세지는 것 또한 '권리'가 아니다. 이처럼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의무'와 '권리'의 관계로 파악하다니, 서글프지 않은가. 문제는 서글픔 즉, 심정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부모가 노후에 자식에게 기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고작 노인복지가 충실해졌다고 해서 인간이 유사(有史) 이래 유지해온 부모자식 간의 기생관계를 약화시키고 파괴해도 되는 것일까? 파괴해도 좋다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도 자식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는 니힐리스트이든가, 아니면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사람일 것이다. (89-91쪽)
늙어가는 우리 부모와 나의 관계, 더 넓게는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화 시대에 뭔가 생각해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책이든 0.001%의 가치도 없는 책은 없겠지...없을 거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