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힘, 듣기의 힘> 180여 쪽 분량의 얇은 책 한 권. 새삼스럽게(?) 읽기의 힘과 듣기의 힘에 대해서 일본의 지성 3인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또 함께 모여서 대담을 나눈 것을 책 한 권으로 엮었다. 굳이 새삼스럽다고 한 이유는 신체에 장애가 있어서 눈과 귀가 멀(먹)지 않은 이상 읽기와 듣기는 어찌 보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힘'을 지니므로 책을 읽는 법이랄지 경청하는 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이 읽기와 듣기보다 말하기(화술)와 쓰기(논술)에 더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읽기와 듣기 없이 말하기와 쓰기가 가능할까? 이 책에서 대화를 나누는 세 지성인 가운데 한 분, 엄청난 독서광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는 "대체로 100대 1정도의 IO비가 아니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51쪽)"다고 말한다. 'IO비'란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put)'과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put)'의 비율을 말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같은 분은 정보를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서 이를 잘 버무리고 걸러내고 응축시켜서 꽤 쓸모 있는 저서를 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풋(Input : 읽기와 듣기)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이를 즐기신다고 하는데 꼭 이 방법만이 인풋의 정답은 아닌 것이 세 지성인 가운데 또 한 분, 일본을 대표하는 임상심리학자이신 가와이 하야오라는 분은 다치바나 다카시와 거의 정반대되는 인풋을 이야기하신다. 카운슬러로서 상담하러 온 사람의 말을 이렇게 읽고 듣는다고 하신다. 카운슬러는, 상담하러 온 사람이 하는 말을 온 신경을 곤두세워 듣는다거나 들은 내용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이 "너무 힘들어 죽어야겠어요."라고 말했을 때 "네? 죽는다고요? 이를 어쩌지요?" 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는 방법이다. (30쪽) 보통은 다치바나 다카시와 같은 분이 엄청나게 대단해 보이고 그게 정답같이 느껴져서인지 몰라도 이분의 자세를 접하고 참 의아했지만, 책을 읽어내면서 '아하! 이런 읽기와 듣기도 있구나!'라는 것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해도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나듯이(?) 나에게는 좀 깨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던 일본 현대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시인이자 원로예술가이신 다니카와 순타로의 이야기가 남았다. 이분은 스스로 인풋이 0일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정말 부족한 독서량을 서슴없이 밝히신다.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제게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시를 쓰는 분도 있습니다만, 책을 통해 시가 탄생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시인에게는 경멸의 말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책만 파고드는 시인은 교양삼아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낮춰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100쪽) 카운슬러의 읽기와 듣기 못지않게 시인의 읽기와 듣기의 세계도 아리송하면서도 참 신기하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읽기와 듣기의 더욱 광범위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냥 들었다는 것(단순히 외부의 물리적인 신호가 전기신호로 바뀌었다는 것)과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것(전기신호가 뇌에 통합 전달 처리된 것)이 다르고, 글자를 읽는 것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지 않나. 마지막으로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예비 지성인들에게 유용한 이유는 정보 과부하 시대에 이 흘러넘치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인간이 정보의 양이나 힘에 압도당하지 않고 명료한 정신으로 바로 설 수 있는지 힌트를 제공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아웃풋이자 결과물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성과위주의 사회에서 아웃풋의 양과 질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인풋에 대해서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래서 좀 더 양질의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