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베어드가 그러는데, 자기 아빠가 어렸을 때에도 이미 이 고장 아이들은 그곳을 '여우굴'이라고 불렀고, 그곳에 가까이 가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곳이 여우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곳에 여우가 살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이 여우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유는…… 글쎄, 사실 아무도 몰랐다. (85쪽)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또한 책제목이기도 한 '여우굴'은 어떤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책표지에서도 보면, 어두컴컴한 여우굴 안을 어른과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바라보고 있다. 그런 곳에 도시 소년 켄이 시골 외삼촌댁에 놀러 갔다가 홀린 듯이 빠져버린 것이다. 켄은 아직 어린 소년이기 때문에 무거운 가방을 끌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어딘가를 간다는 것부터가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켄의 부모님은 주말 골프대회를 가시며 불안하지만 외삼촌댁에 아이를 보낸 것이다. 아이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길을 물어봐도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내 어린 시절 경험으로 보나, 주변에 초등학교 자녀를 둔 지인들을 보나 아이를 어딘가에 혼자 보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혼자서 어딘가를 다녀본 경험을 지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켄은 혼자서 외삼촌댁에 간 것 말고도 사촌 한 명과 어두컴컴한 숲에서 야영을 하는 용기도 발휘한다. 조용하고 깔끔한 켄의 집과 조금은 떠들석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질 것 같은 외삼촌댁, 그리고 온갖 벌레들이 몰려드는 끈적끈적한 야외 침낭 안은 무척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켄이 빠져든 지하 깊숙한 공간과 땅 위의 세상도 그렇다. 도시에서 지하철을 탈 때 빼곤 땅 위만 걸어다니고 변변찮은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보는 나에게 현장감이 느껴지는 켄의 모험담은 이야기를 다 읽어낼 때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켄이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도 금을 발견했을 때... 너무 급격한 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 순간에 일확천금을 얻는다면 나는 어떨까?'를 생각해 보게 되니까 나 역시 눈먼 어른일지 모르겠다는 걸 순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 여우굴은 무척 편안한 공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시끄럽고 떠들썩하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땅 위 세상, 아이들은 이유도 모르고 유난스러운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세상보다는 조용하고 안락하고 따스한 흙의 공간에서라면 두렵지만 조금 쉴 수 있지 않을까. <여우굴>은 여행과 고난을 통해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한 소녀(켄)의 이야기이자 물질만능주의에 눈먼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는 모험의 재미와 안락을 어른들은 세상사에 찌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