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문명은 규격을 낳고, 규격은 사람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모양입니다." (119쪽)
정말 그런가 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발명을 실감할 수 있었던 건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과학사 일주>에서 마지막 101일째 만난 컴퓨터 정도이고 나머지는 이 책이 아니면 평상시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별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최신세대 중에는 인터넷에 자유자재로 접속할 수 있는 지금의 컴퓨터 환경도 그냥 '펑!'하고 생겨난 줄 알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제까지 이룩한 과학사가 현대인의 필요를 그럭저럭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말도 되고 규격화된 기계문명이 호기심을 잠재워버렸다는 말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발명 특허 기술을 실용화하려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발명의 세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살고 있을 우리 다수에게 과학사의 큰 흐름을 보여주고 현대인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발명품과 관련하여 다양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준다.
구성은 5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테마를 제외하고 테마마다 이틀에 한 가지 발명품, 그러니까 10가지 발명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1장 도구 -불/석기/칼/숟가락/가위/망치/바늘/총기/타자기/로봇
제2장 재료 -금/은/구리/유리/고무/강철/석탄/석유/플라스틱/합성섬유
제3장 보존 -그릇/저장식품/집/건전지/옷/신발/가방/자물쇠/깡통/박물관
제4장 교통 -바퀴/마차/자전거/기차/배/자동차/비행기/지하철/잠수함/우주선
제5장 정보 -나침반/지도/전화/신문/포스터/책/달력/시계/온도계/텔레비전/컴퓨터
각 발명품을 만나면서 놀라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의 발명품이 다른 발명품을 부르고, 또 다시...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요의 행렬이 줄줄이 이어지는가 하면 우연이라는 사고가 필요의 아이디어를 슬쩍 건드려 주는가 하면 필요에 의한 발명품이 양날의 칼처럼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함을 알 수 있었다(예-식생활의 동반자인 칼이 처형도구나 수술용 도구로 사용됨,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굽 높고 뾰족한 신발이 건강상 좋지 않음에도 여성이 자기만족을 위해 널리 신게 된 일). 또한, 자연에서 힌트를 얻은 발명품들은 과학적 호기심뿐만이 아니라 자연에서도 멀어진 우리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예-철새의 움직임에서 파악한 비행 원리, 두더지를 관찰하여 땅속에 길을 내게 된 지하철, 수압과 추진력의 조화를 꾀하고자 고래 모양을 택한 잠수함).
'기계 인간'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창조력이 많이 시들해진 요즘인데 이 책을 통해서 인간 욕망을 확인해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명품에 더해 새로운 발명에 눈을 돌려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자. 지하철이 처음 운행되었을 때 '호기심과 편리'가 '오염과 불쾌'를 억눌렀다는 실화는 인간 호기심의 역사를 다시 보게 하고 앞으로 쓰여질 과학사에도 힘을 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