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처럼 협상하라
조지 로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트럼프? 잠깐 고개를 갸우뚱해 보지만 곧이어 사람들이 못 박아버린 '부동산 황제 ·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라는 것을 알고 솔직히 조금 부럽고 그의 협상 전략과 전술이 못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책제목이 <트럼프처럼 협상하라>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쓴 책은 아니고 - 만약 트럼프가 썼다면 '나처럼 협상하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표지 사진에는 트럼프다.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보기만 해도 억! 억! 읽고 싶다. 읽고 싶다? 그러다 돈귀신 붙겠습니다. 미리 책내용을 찔끔 흘리자면, 돈밖에 모르는 사람은 협상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합니다 - 억만장자로 발돋움하려는 시점, 거의 첫 대(大)거래에서부터 트럼프의 파트너로 함께 일해온 조지 로스George H. Ross가 이 책의 저자이다. 그렇지만, 책내용은 그동안 조지 로스와 도널드 트럼프가 협력하여 이루어낸 협상과 그 비법을 담아낸 책이기 때문에 누가 썼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단지 이 책 전반에 유유히 감도는 둘의 끈끈한 파트너십을 볼 때, 대(大)협상가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획득해야 할 준비물이 바로 이 '내 사람 만들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협상은 혼자서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연주와 다르게 반드시 사람과 하는 것이다 보니 사람 보는 안목이라든지 사람 다루는 능력은 무척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조지 로스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지목하고 엄청난 재량권을 줌으로써 그때 이미 대협상가의 씨앗을 뿌린 게 아닌가 싶고, 조지 로스 역시 당시 자신의 몸값을 고려해 봤을 때 돈도 없었을 트럼프를 어찌 믿고 따랐는지 궁금하기만 한데 그런 것들은 이 책의 협상 전략과 전술 비법 속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협상이란 무엇일까?


"협상은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첫 번째 형식이다.협상이란 우리의 요구와 욕망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자 타인의 요구와 욕망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일컫는다." (29쪽)


이 밖에도 협상이란 뭐고, 뭐고, 뭐가 아니고, 뭐가 아니고...본론에 들어가기 전, 프롤로그 20여 쪽에 걸쳐서 장황하게 언급한다. 책을 받아보기 전에 나는 협상이란 우리 정부가 잘못 치러낸 쇠고기 협상만 있는 줄 알았을 정도로 무지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시커멓고 왠지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책을 앞에 두고 '이거 완독이 어렵겠는데...'라며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묵혀두었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기가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상황에 적절한 질문과 반응 방식인 대화글은 따로 체크해 놓느라 펜을 놀리는 손까지 바빠졌다-타고나길 협상가 체질이 아닌 것 같은 내가 그것들을 정말 말로 내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그동안 내게 전략적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이 행간을 넘어가기가 바쁘게 줄줄이 떠올랐다. 전략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꿈도 못 꿨던 내게 몇 달 전, 40대 남자와 70세 노인이 취했던 전략들을 이 책에서 하나하나 해석해 주는 데에는 '아! 맞다, 맞다, 이래서 이랬군, 저래서 저랬군, 아! 아!' 감탄사의 연발이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정치 쪽에 선이 닿고, 우리 사회에서 좀 된다 싶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은 어디서 배운지 모를 협상 전략을 공공연하게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다수 숨은 협상가들이 이 책에서 말하는 '트럼프식=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방법'을 취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한다는 데 있다. 너무 무디다. 알고 나면 뻔한 수작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뻔한 수작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이어질 또다른 협상을 기약하고 염두에 두므로 관계 형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나름대로 윤리적인 태도에 적합한 전략을 풍부하게 알려준다.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조금은 씁쓸한 전략도 숨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룰도 있다. 나는 아직 미숙한 협상가여서 협상과 사기의 미세한 차이를 잘 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협상이 삶의 일부라는 데 공감하며, 협상을 배운다면 좀 더 매끄럽고 융통성 있게 보이는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 같긴 한데! 협상은 이심전심의 전략이 아니고 꼭 정확하게 전략적으로 전달하고 전달받아야 하는 작업이므로 습관이 안 된 사람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일임은 분명하다 감히 상상으로라도 노련한 협상가들이 판치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무서워질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말, 앞집 할머니가 딸 내외가 외출 갔다 안 돌아와서 집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며 우리집에서 소변 좀 보자고 문을 두드렸던 사건은 참말 정겹기 그지없다. 앞뒤 전후를 재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구하고 먹을 것이 생기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꽤 유능한 협상가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화의 추세가 몹시 거세다.        


남에게 바보같이 당하지 않기 위해(예-독도 문제, 쇠고기 협상 문제), 최소한의 내 방어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의 예술적인 교환을 위해 <트럼프와 협상하라>라는 훌륭한 협상 교과서를 누구든 꼭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자주 강조하는 자기만의 협상 스타일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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