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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어미 자서전
백금남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뺑덕어미 자서전>은 국악 장편소설이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참 무모한 책읽기를 시도한 셈이다. 이 책이 국악 장편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국악도 뭣도 모르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표지를 보고는 더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다. 대충 뺑덕어미라는 못생기고 뻔뻔한 캐릭터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기대를 한 것인가.
그런데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조금 조심스럽다. 일단 이 소설은 뺑덕어미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 아니다. 또한, 뺑덕어미가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2의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리송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 백금남 님은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소리꾼 부부의 환영이 자신을 소리의 숭배자가 되게 했는지 모른다고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직접 소리판에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보았던 소리꾼 부부-남편은 북을 치고 아내는 소리를 하며 때로 홀로 가야금을 타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이 소설의 등장인물로 구성하여 소리하시는 분들의 집념을 글로 승화시켜 표현하셨다. 피를 토하며 홀로 득음의 경지에 오르려는 분들과 그런 분들의 세계를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내가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지라 '글로 승화시켰다'는 표현이 썩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소리를 접할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니 이런 소설이 아니면 어느 누가 소리 세계를 코빼기만큼이라도 훔쳐볼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이 소설을 한때 대단한 인기몰이를 했던(했지만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 판소리 영화 '서편제' 옆에 두고 싶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리꾼 부부의 딸 찬희의 말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12쪽)
"어머니는 유행가 가사에다 나름대로 판소리 가락을 붙여 불렀다." (25쪽)
찬희는 어렸을 때 지독한 자폐증을 앓던 아이로 일찌감치 외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소리 바닥, 고창 장안골로 보내졌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하자 어찌할 수 없는 소리 가문의 집념은 찬희에게 모아진다.
"어쩌면 그때 외할아버지는 내게서 소리꾼의 자질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54쪽)
"아버지가 그 많은 재산을 도박과 계집질에 다 쏟아 붓고서야 나를 찾으러 왔다." (85쪽)
<뺑덕어미 자서전>은 꾸며진 이야기인 소설이지만 소설 구석구석에서 우리 소리인 구성진 판소리 대목을 만날 수 있고 찬희가 전수받는(독자가 읽고 듣는 이야기이기도 함) 소리 가문의 역사 가운데 그들만의 한(恨)과 지혜를 구수한 사투리로 전달해 주므로 이를 꼭 소설 같지만은 않게 하는 진지함이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恨)을 너무 무겁고 퇴폐적으로 다룬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에 덧붙여 여성 독자로서 '그 시절 소리판 여성들의 그렇고 그런 한(恨)과 찬희 아버지의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못 말리는 오입질 묘사부분은 좀 덜 부각시켰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바라보지만 이것이 또 소리를 끓어오르게 하는 무엇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덕분에 물처럼 흘러가 버리면 그만인 줄로 알았던 포괄적인 소리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인터넷에 올라온 국악을 조금 들어보았는데 역시 내용을 이해하며 듣기에는 무리였다. 옛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굳이 뭘 말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국악이 좋아질 것만 같은 독자로서 앞으로 만성 경제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국악소설을 한 편 더 기대해 본다. (덧글 - 이런 나의 주문이 작가님한테는 굉장히 뿅뿅뿅한, 알콜 도수 19.5도의 소주 한잔과 같지 않을까...ㅡ.-; 이 소설을 읽는 시기에 우연히 폭탄주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 소설은 맨정신에 보아야 한다. 반드시 맨정신에 읽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