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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쇼핑 - "성형도 쇼핑이다!"
피현정 지음 / 아우름(Aurum) / 2008년 4월
평점 :
사람은 나이에 따라 시크릿(secret, 비밀)을 다양한 의미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가 사오신 바나나나 오징어를 베개 밑에 숨겨놓고 그것을 부모님이 모르시길 바랐다.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삐쩍 마른 영어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됐을 때는 조금 불순한 의도로, 결혼하고 싶다는 혼자만의 공상을 했고 복도 모퉁이를 돌다가 그 선생님을 보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서 붉어진 얼굴 때문에 그것은 내 '비밀'이자 곧 '발각되고야 말 비밀'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비밀이란 말보다) '시크릿'이라고 하면 어쩐지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느낌이다. 어쩌든 책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시크릿'이 붙은 책제목을 왕왕 쏟아내고 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단순하게 '시크릿'이 제목인 자기계발서류의 베스트셀러도 있는 것 같고, '00 시크릿' 이런 식으로 동그라미 안의 비밀을 알려줄 법한 책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책은 시크릿이 앞에 붙고 쇼핑이 곧바로 졸졸 따라붙어서 둘 다 한 몸을 이룬 <시크릿 쇼핑>이다. 그러면 쇼핑은 뭔지 알겠는데 '시크릿'은 뭐라는 말인가. 부제를 보면 곧 알게 된다.
부제는 "성형도 쇼핑이다!"이다. <성형 쇼핑>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나 보다. 처음 느낌은 '무슨 책이 이렇게 두껍나', '책이 무거워서 집에서 몰래 읽어야겠다', '화사하다', '어? 앞표지와 뒤표지가 야누스 같다' 등 두께와 상관없이 단순한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뜬 마음이었다. 저자 피현정(뷰티 큐레이터) 님은 뷰티 전문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이 있으며 책 내용에 의하면 성형할 생각만 있는 분이신 듯한데 척 보이는 외모가 예사롭지 않다. ^^;
저자가 굳이 이렇게 성형 쇼핑 안내서를 낸 이유는, 이 시대에 성형이 유행처럼 번져 대중화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조짐인데 너무 은밀하게만 진행되어 사실과 정보를 알기 힘들고 피해 사례가 우려되기 때문에 올바른 잣대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날개에 정확한 저자의 의도가 쓰여 있다.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성형 쇼핑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은 성형 수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성형을 막기 위해 현명한 성형 쇼핑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책 앞날개에
내용은 성형 교과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성형 전반에 대한 미용실 수다식 이야기와 약간의 전문성에 기반한 일목요연한 정보들이다. 성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연예인 이야기. 그들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니까 언뜻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소 긴장되고 이상한 느낌도 이어진다. 특히 총 다섯 파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PART 4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보인 부위별-얼굴 중 이마, 눈(눈위 쌍꺼풀과 눈밑 애교살, 다크서클), 코, 입술, 광대, 턱, 보조개, 주름 그밖에 지방 이식과 흡입, 가슴, 복부, 힙, 종아리, 허벅지, 팔, 등, 배꼽, 쇄골, 무릎, 귓불... 정말 구석구석이다-수술시간, 마취방법, 입원치료 여부, 수술방법, 수술 후 관리법까지 알려준다.
책을 읽기 전에도 예상되는 바였지만, 성형은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만족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이고 심지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외모도 경쟁력이고 돈이니까(성형테크로 외모의 자산 가치를 높여라-이 책 PART 3 큰제목) 열심히 트렌드를 반영하라고 한다. 여기서 남성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지만, 남성은 비교적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편이지만 여성은 남성과 또 다른 시각적 동물로 그녀들의 눈동자는 언제나 바쁘다. 성형을 원하는 그녀들의 욕망이 높아질수록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집착에 가까워진다. 나는 단순한 시선이 아닌 집착에 가까운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운 사람 중 하나이다. 여자가 여자를 집착의 동물로 외모지상주의자로 훈련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누가 뭐래도 외모가 하나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시대인 건 분명하다. 또한, 외모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그녀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외모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뛰어넘어서 진지하게 성형을 생각해본 여성이라면 한 번쯤 보면 좋은 책이다. 살아숨쉬는 동안 매일 마주쳐야 할 자신의 얼굴이 혐오스럽다면(이건 병이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의 수술대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면 얼른 이 책을 만나서 다수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적절하게 욕망을 풀고 멋지고 활기차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잡담 한마디 더 - 신기하게도 성형을 한 여성들은 성형 전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영원한 시크릿 아니면 자신만만하게 한 점 부끄럼 없이 시크릿 개봉박두할 자신이 없다면 되도록 소형 사고에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도 저도 아닌 불안한 시크릿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고달프고 불쌍한 인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