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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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열정의 과잉으로 시작되었다가 다시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인생의 기획이죠. -p28

우리 인생은 불과 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략.. 사람은 욕망과 광기의 존재인 한에서 거칠게 태울 것들을 거머쥐고 상승하는 불꽃이고, 욕망을 비운 존재인 한에서 불씨가 꺼져버린 한 줌의 재지요. -p164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편지 형식으로 담긴 여행 산문집이다. 부칠 수 없는 이 편지의 수신자는 때로는 여인의 얼굴이 되었다가, 이십대의 청년이었다가, 독자가 되기도 한다. 서문은 남반구에 위치한 시드니와 오클랜드 여행으로 시작한다. 여행하는 내내 에드몽 자베스의 시집을 끼고 다니며, 한 편의 편지가 완성될 때마다 마지막 줄에는 "당신, 잘 있어요."로 매듭짓는다. 습관처럼 반복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인문학을 탐구하고 연결 짓는 시선이 탁월하다. 이국의 풍경 속에서 찰나의 멜랑콜리에 화답한다. 삶에 방황하고 좌절과 고독에 부대낀다면, 이곳에서 얼마 간의 평화를 쟁취할 것이다. 그것은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한 것들이다.

 

 

여행은 일상과 노동에서 놓여나는 보상이다. 구속된 일정을 버리고 낯선 길을 탐색해가는 여행에서의 경험은 두려움 대신 직관력을 키워준다. 경관이 아름다운 도서관이 들어선 오클랜드와 풍광이 좋은 시드니에는 정신병원이 많다. 이 둘의 공통점은, '회색의 영혼을 위한 고독과 기다림의 장소'라는 점이다. 정신병원을 두고, 이성주의가 득세한 사회가 만든 예외자들, 차별과 배제의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라 일컬은 점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억압과 폭력에 얼마나 익숙한가 말이다.


인간을 사물화 시키는 프랑시스 퐁주의 <불과 재>에서 인종의 다양성을 찾아내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불로 살아남은 이슈마엘을 통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교훈을 시사한다. 악마적인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은 기성세대의 이기심이 응집된 사회다. 그 현장에 뛰어들지 말지는 청년의 몫이며, 불이 될지 재가 될지 역시 자기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편지의 결론에는 그 어떠한 희망고문도 아닌, 그저 불행에 꺾이지 말 것과, 끝까지 견디며 살아내기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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