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테메레르』 시리즈의 작가답게 새로운 드래곤 판타지를 재현하나 싶었는데 여기에 소개된 '드래곤(살칸)'은 불사의 존재인 동시에 인간이자 마법사를 의미한다. 16세기 중세 유럽, '우드'라는 무시무시한 숲으로부터 '폴니아 왕국'을 보호해주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높은 탑에서 백 년 동안 홀로 살아온 드래곤은 청년의 동작과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드에 들어갔거나 숲의 열매를 먹은 자는 오염되거나 미치광이가 되었고, 드래곤은 마법으로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모두들 우드를 두려워했으나, 골짜기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은 '드베르닉' 마을을 떠날 수 없었고, 마을을 보호받기 위해 열일곱 살의 가장 특별한 소녀를 드래곤에게 보냈다. 그러한 소녀들은 십 년 뒤에 눈부신 성장으로 되돌아왔으나 마을에 머물지 않고 먼 도시로 떠났으며, 소녀들이 겪었을 수난을 발설하는 행위는 오랜 세월 금기였다. 사실 마법의 재능을 타고난 자는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왕의 법에 정해져 있었고, 드래곤은 한 눈에 그것을 알아보는 투시력이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드가 마법의 능력을 가진 자를 삼켜 버린 경우에는 더욱더 엄청난 존재가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에 바쳐질 소녀는, 모든 것이 준비된 아름답고 완벽한 '카시아'일 거라고 모두가 장담했지만 마법의 공을 받은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던 평범한 소녀 '아그니에슈카(니에슈카)'였다. 카시아와 니에슈카는 요람에서부터 함께 놀았던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였다.

 

니에슈카는 쉽게 옷을 더럽혔고 여성스럽지도 못했으며 다루기 쉬운 소녀도 아니었다. 드래곤의 악의에 찬 조롱에 물건을 내던지고, 자신을 겁탈하려는 마렉 왕자를 기절시킬 만큼 저돌적이고 당차다. 드래곤은 항상 니에슈카를 노려보거나 짜증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고, 도무지 칭찬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쓸모없는 것이라는 비난과 열등의식만 심어준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가족을 떠난 소녀를 위해 위안거리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소녀는 마법의 주문을 연습하면서 점차 강해지고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넉 달째 서투른 마법을 익히던 중 '노란 습지'에서 오염된 짐승 '키메라'의 습격을 받으면서 드래곤이 탑을 비운 사이, 드베르닉의 모든 소가 오염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지금까지 드래곤이 선택한 소녀가 십 년이 되기 전에 탑에서 나온 경우는 없었다. 그 어떤 주문도 능숙하지 못했던 니에슈카였지만, 절박한 상황 앞에서 능력을 발휘해 '불의 심장'으로 오염된 소들을 소멸시킨다. 뒤늦게 니에슈카를 구하러 온 드래곤이 늑대의 습격을 받자, 니에슈카는 마법사 야가의 치유 마법으로 정화시킨다. 오백년 내내 그 어떤 마법사나 드래곤도 해내지 못했던 야가의 주문을 편안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키메라의 습격은, 드베르닉 전체로 오염이 퍼져나갈 때까지 드래곤을 잡아두기 위한 덫이었으니, 니에슈카는 마법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며칠 후, 카시아가 우드의 '워커(거대한 대벌레)'에게 납치되는데 지금까지 전설의 마녀 야가를 제외하곤 우드 안으로 들어갔다가 온전하게 살아 나온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니에슈카는 카시아를 우드의 하트트리로부터 꺼내오고 드래곤의 정화 마법을 통해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며 오염된 공기를 빼낸다. 드래곤은 탑에 오기 전에, 우드가 마녀 '레이븐'을 하트트리에 가뒀고 그녀가 지키던 마을 '포로스나'를 삼키며 경계를 넓혀갔고, 로시아 왕국 역시 우드로부터 여러 마을을 잃었다.

'루스의 소환 마법'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읊어야만 작용하게 되어 있으므로 기력이 다하는 순간 주문의 체계가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는 이 마법을 수행하는 것을 강력한 세 마녀가 함께 했던 것을 한 번 본 것이 전부였고 그들은 죽음에 이를 정도였으나, 니에슈카와 드래곤은 우드로부터 카시아를 구해낸다. 카시아는 전보다 더 아름답게 변했으나 우드에 다녀온 소문으로 마을에 돌아가지 못한다. 우드에서 나온 뒤로 그녀의 몸은 화살과 칼도 튕겨나가는 단단한 몸과 강한 힘으로 용감해졌으나 법에 따르면 우드로부터 오염된 자는 처형당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카시아가 우드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마렉 왕자와 마법사 '팔콘(솔리아)'은, 어머니 한나 여왕을 우드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군대를 소집한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에 로시아의 왕세자 바실리가 대사로 폴니아를 방문했고 한나 왕비와 사랑에 빠져 함께 우드로 달아났다. 폴니아의 왕은 왕비를 납치한 로시아의 왕세자를 비난했고 로시아의 왕은 왕세자의 죽음을 폴니아 탓으로 돌렸다. 이후 두 나라는 전쟁을 거듭하며 휴전과 조약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폴니아의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그중 왕세자 '지그문트'는 현명한 청년이었다. 음유시인들을 통해 전설적인 영웅으로 불렸던 마렉 왕자는 이십 년 동안 우드에 갇힌 어머니 한나 여왕을 구하기 위해 서른 명의 군인을 바쳤으니, 이 일의 배후에는 우드가 있었다. 우드가 누군가를 놓아주었다면 거기에는 목적이 있었다.

마렉은 왕의 명령으로 오염된 카시아를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니에슈카는 카시아를 단두대에 세우지 않기 위해 우드로부터 정화됐다는 증언을 해야만 했는데, 마법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만 증언할 권리를 얻었다. 마렉은 카시아와 여왕을 앞세워 도시로 들어갔고 드래곤은 우드의 공격으로부터 '자토첵'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마법사 명부에 이름을 올리려면 보통 칠 년은 공부해야 청할 수 있었지만 니에슈카의 경우는 일 년도 멀었으니 천재 마법사가 따로 없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카시아를 변호할 자격을 얻는 일 뿐이지만 주변에는 방해꾼 뿐이고 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왕은 몬드리아 공주와 재혼을 위해 재판을 미뤘고 훗날 조용히 왕비를 처형할 일만 남은 것이다. 한편,
차로브니코프 서재에서 우드 같은 느낌의 동물우화집을 발견한 니에슈카는 이십 년 전 로시아 궁에서 보내온 선물이자 왕비 사건의 증거물임을 알게 된다. 오염의 증거물, 이 책이 왕비를 이끌었다면 그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오염된 상태였다. 그러나 왕비는 반역자 바실리가 자신을 우드로 납치해서 나무에 가두었다고 고백하고 마렉은 우드가 아닌 로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결국 전장으로 보낼 남자들이 부족한 두 왕국의 전쟁은 우드가 바란 일이었다. 왕세자는 전장으로 나가 죽임을 당하고, 동생 마렉은 왕좌를 노리며 조카를 사지로 내몬다. 발견 즉시 태우지 못한 동물우화집은 결국, 발로 신부와 더불어 왕까지 집어 삼킨다. 왕비는 오염은 되지 않았으나 우드의 꼭두각시였다. 왕과 왕세자, 왕세자비까지 죽음에 노출된 뒤, 니에슈카는 마렉 왕자를 피해 카시아와 함께 왕세손 스타쉑과 마리샤를 데리고 드래곤의 탑으로 이동한다.

우드에 들어선 순간, 거대한 대벌레 워커에게 납치 당하고, 은색 사마귀 괴물에게 가차없는 죽임에, 숨을 쉬기도 힘든 들큼한 악취의 하트트리가 공포스럽게 배열돼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법이 점차 견고해지는 니에슈카, 괘팍한 표정 이면에 온정이 그득한 폴니아 최고 마법사 드래곤, 우드로부터 풀려난 뒤 아이언맨이 된 카시아, 우드가 되어버린 한나 여왕, 자신의 이익에만 움직이는 마렉 왕자, 수도사에서 필사본에 채색을 하며 살아간 발로 신부, 현명한 마법사 '알로샤', 왕관에 또 하나의 보석을 박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이려는 카시미르 왕, 어떤 악의 영향에도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폴니아의 가장 성스러운 유물 '성 야드비가의 베일' 등 소설은 우드라는 무시무시한 숲의 뿌리 만큼이나 거대한 성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드는 처음부터 오염된 곳이 아니었다. 애초에 맑고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인간들이 오염시켰다는 상징성이 드러난다. 니에슈카가 병든 하트트리를 서서히 정화해나가고 사나운 워커들조차 조력자가 되면서 우드는 본래의 숲으로 변모해간다. 훗날 드래곤과 니에슈카의 마법이 지금보다 강한 결속을 맺어 지금보다 뜨거운 로맨스가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감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