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고전인가 -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네빌 몰리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왜 지금 고전인가』는 고전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고전을 통해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정치까지를 아우르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고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각 시대와 힘의 관계를 들려주기도 한다. 막강한 교회의 힘으로 라틴어는 학문과 법 분야에서 전 유럽에 걸쳐 사용되는 언어였고, 그 결과 고전은 과거 모든 교육의 기초 역할을 했다. 라틴어는 모든 과학적 지적 소통에서 필수적인 매개체였으며 고대 로마의 문헌을 통해 고위층에게 교육되었다. 고전에 담긴 모든 지혜는 지식의 원천으로도 간주되는데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의학은 갈레노스, 철학은 플라톤, 역사는 헤로도토스로 시작돼 오늘날에까지도 학문 뿐 아니라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전이 부상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전의 권위가 붕괴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여기에서의 고전은, 과거 문헌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술로 개발되는 실용 학문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읽기 쉽게 번역한 고전은, 고전어 지식 없이도 고전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고전은 귀족 남성 교육의 전유물이었으며, 특히 영국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명문대 입학 조건에 고전어 능력이 필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와 독일은, 로마제국의 정복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 미국 또한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금도 백인 문명이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활용하는 실정이다. 고전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결과지만, 이만한 비도덕적인 악용이 따로 있을까 싶다. 성리학을 정치 기반으로 둔 조선 신진사대부의 다른 이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고전의 모순된 방식과 고전 문화의 성취 뒤에는 힘없는 노예와 민초들의 죽음이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과거 지식의 유용성과 학문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투키디데스의 글을 제시한다. 언제부턴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다루는 논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의미)'은 단골로 등장했다. 작금의 미중무역전쟁은 우리에게도 악재로 통하고 있으며,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 역시 비껴갈 수 없는 문제로 작용한다. 우리가 고전을 배우려는 의도는, 시간의 연속성이 있으며 그러한 규칙성을 밝힌 인물이 투키디데스였다. 그는 인간 본성, 인간 조건 측면에서 규명했고, 국가의 행위, 국제 체제의 속성, 갈등의 기원에서 그 경향을 발견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것에 버금가는 '역사를 잊은 자는 과오를 반복하게 된다'라는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주장이 본문에 재기된다. 우리는 역사 덕분에 불확실성에 빠지지 않고, 역사의 순환을 통한 흥망성쇠 또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지점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단할 수 있는 잣대로 고전을 활용한다면 도움이 되리라.

고전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성취의 절정이며, 한층 높은 수준의 존재와 이해를 향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p34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실하고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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