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이전까지 음식의 이름이나 맛, 음식이 갖고 있는 역사와 문화, 이름이 붙여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단순히 인문학적으로 읽는 음식 이야기일뿐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들이 먹는 음식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자본주의는 당연하고 정치권력과 언론까지 국민의 식생활과 의식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니 각성하고 볼일이다. 저자는 떡볶이와 치킨을 맛이 없다고 5년 내내 외쳤다! 맛있다고 말하는 건 남들이 맛있다고 하니까 나도 맛있다고 하는 '대중의 관성화된 미각'이라 정의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맛이란 집단 최면으로 자리잡은 종교와 같은 광적인(?) 것으로 보는 듯하다. 생각해 보니, 매일 마시는 별다방 커피도 맛있어서 찾는 것인지, 문명이 가져다 준 이기심의 발로인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주저하게 된다. 세계 제일인 줄 알았던 김치가 아직도 세계화가 되지 못해 미국 잡지에 광고비를 들여야만 하는 형편인 점이 안타깝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에 뜨는 먹방과 쿡방에 대해, 저자는 하드코어의 푸드포르노라 이른다. 포르노는 쾌감이라는 말로 대체되는데 진정한 즐거움이란, 공감이 형성된 진실이어야 할 것이다. 그간 갖고 있었던 음식에 대한 편견, 다소 즉흥적이고도 가벼운 판타지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과거에 '떡볶이'는 가래떡을 고기와 채소 등과 함께 넣고 볶았기에 이름 붙여진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지금의 떡볶이는 떡을 볶지도 않는데 떡볶이라 부르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떡매운탕이나 떡고추장조림이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다. 하기사 '닭갈비'에는 닭의 갈비가 없고, '감자탕'에는 감자 한 알 안 들어가도 감자탕이라 불린다. 떡볶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 세계화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였고, 외국인의 입맛에 맞춰 매운맛을 없애 파스타처럼 개발되었으며, 한식 세계화 행사에 전시되었다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떡볶이는 1970~80년대 불량식품의 대표였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서민 창업의 인기 아이템이자 프렌차이즈 외식업계에 자리를 잡았다. 2000년부터 우리 정부는 해마다 40만톤의 쌀을 북한에 지원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를 중단했고, 정부 창고에 쌀이 쌓였으며 보관 비용도 어마했다. 쌀값은 급락했고, 쌀을 처분할 명분을 떡볶이와 막걸리에서 찾았다. 한식 세계화 예산에 국내 홍보비가 쓰였던 이유가 정부 창고에서 썩어나는 쌀 처리 문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남아도는 쌀, 북한에나 지원할 노릇이지, 참 못된 심보다!
내 개인적인 기호식품은 아니지만, 평소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은 굉장하다. 축구 한일전이라도 앞두면 동네 치킨 가게는 온통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치맥이 정답이요, 일상적으로 자주 즐기는 간식이자 주식 대체 음식이기도 하다. 헌데 한국의 치킨이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병아리 수준의 1.5kg 닭으로 튀겨진다니 총 맞은 기분이다. 맛없는 닭 위에, 여러 첨가물의 튀김옷과 기름으로 입혀내는 양념맛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의 닭은 2.7kg이고, 사료를 더 먹여 키우는 데 반해 한국의 닭은 손바닥만한 케이지에서 병들기 전에 잡아야 하는 경제 비용이 이유였다.
'슬로푸드'는 제조법을 특정한 것이 아닌, 사회 경제적 정치 이데올로기적 용어로, 세계화를 반대하고 지역적 삶을 지향하는 우리네 신토불이와 같은 개념이라고 한다. 1984년 GATT체제를 세계화의 기치로 내걸었고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으며, 값싼 글로벌 먹거리를 '패스트푸드'로 규정한 정치적인 소신을 갖춘 운동이라 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슬로푸드와는 결이 다르다. 우리는 전통과 건강이 강조된 한식과, 프랜차이즈 죽집까지 슬로푸드로 이해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사를 2세기 동안 추진해온 유럽과 달리 30년만에 압축 성장한 한국의 전통 농업사회는 슬로푸드 할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 번도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살아본 적이 없는 농민들은 패스트푸드 시장에서 밀려난 지 오래고 현재에 와서 그 현상은 더 격화돼 있다. 농민과 더불어 살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1960년대 한국의 양돈산업에 일본 자본이 관여하였다. 일본이 원하는 부위는 안심과 등심이었고, 남은 부위들은 우리 땅에 남아 삼겹살, 돼지갈비, 순대, 족발, 돼지국밥 등의 음식으로 우리 국민들이 맛있게 처리하는 과업을 받았다. 남은 것을 처리하려던 심산에서 시작된 것이, 1990년대 들어 삼겹살 부족 사태를 맞았고, 외국에서 잘 소비되지 않는 삼겹살을 우리는 수입해서 소비했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을까! 일본불매운동 리스트가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듯, 친일의 추억이 깃든 먹거리 또한 이 땅에 너무나 많이 산재해 있다. 붕어빵과 국화빵 등 빵틀에 반죽을 붓고 팥을 넣는 것이 모두 일본의 개발품이라니! 거기다가 단팥빵과 빙수, 김밥, 어묵, 단무지, 찹쌀떡, 생선회까지. 너무나 자주 접하는 음식들이라 으례 우리네 것인 줄만 알았던 것이 착각이었다. 음식에 이념이 깃들면 안 되겠지만, 알게 된 이상 먹기를 거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