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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디테일 - 고객의 감각을 깨우는 아주 작은 차이에 대하여
생각노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1월
평점 :

'디테일'은 세부적이며 상세한 부분으로 번역되지만, 그것에는 또다른 감각을 품고 있는 단어임에 틀림 없다. 저자는, 디테일의 이면에 성실함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일본을 통해 공감했고 그 사례와 기록들을 『도쿄의 디테일』에 녹여낸다. 이 책은, 일본을 여행하면서 겪은 찰나의 에피파니(깨달음)이자 고객을 위한 배려를 통해 얻은 '어떻게 성실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서 출발한다. 젊은 마케터이자 기획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본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했다. 업무에 필요한 디테일 감각과 기록하는 습관을 높이길 원하는 독자를 위해 본문을 다섯 가지 키워드 Communication, Strategy, Interview, Respect, Marketing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도쿄 번화가에 들어선 대형 문구점 '이토야'가 내 마음을 흔든다. 1904년 개업한 이래 무려 114년 동안 일본 문구류 시장을 이끈다는 점에서 압권이다. 층마다 종류와 내용이 다른 백화점처럼, 문구류에 저마다의 생명력과 개성이 담겨 있는 데다가 만물상 비즈니스 전략을 취하면서도 고급화 느낌까지 갖고 있다. 참고로, '빌 마르쉐'는 고급 편의점으로 통하는데 이곳 또한 상품 수가 상당하다. 만물상은 조악하다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케이스라 신선했다.
식사 전후의 소비자를 생각하는 편의점 도시락 속에 담긴 일회용 물티슈와 이쑤시개, 자일리톨 껌통에 담긴 껌만큼의 개수를 가진 종이, 나리타 익스프레스 열차의 각 량 뒷부분에 설치된 '캐리어 셀프 잠금 시스템', 대형 마트 상자에 스티커형으로 부착하는 손잡이 등 사소해 보이지만, 손님이 불편을 느끼는 부분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배려다. 글로벌 장거리 버스 업체로 유명한 메가버스는, 좌석마다 무료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를 제공하고 도착 예정 시간을 디스플레이 하는 등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것이 규격화나 표준에서 벗어난 시각이겠지만 가장 내 눈을 사로 잡은 물건은, 키테의 굿 디자인 스토어 도쿄에서 테이프처럼 끊어서 사용하는 '접착식 메모지 스티키 노츠'였다. 평소 나 또한 저자처럼 접착식 메모지를 선호하는 편인지라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사용할 필요성이 있던 부분이었는데 그 불편을 직접 경험한 분이 이를 디자인했고 상용화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끈 제품이고, 2017년 Good Design Best 100에 꼽혔으며 제조 부문 디자인 특별상까지 수상할 정도였다니 그만큼 다수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제품이 아닌가 싶다.
이런 섬세한 배려는 상품만이 아닌 공공장소에서도 발견된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배려한 손잡이 위치에 있는 벨, 공중전화 부스에서 발견한 간이 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배려로 만들어진 '초록불 신호 연장 버튼', 화단 옆의 설치물 등 공공 장소에서 발견되는 편리한 고민들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저자가 매번 일본 여행을 기대하는 이유는, 문화와 디자인, 건축 등에 담긴 독특한 매력에도 끌렸겠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숨겨진 디테일의 힘을 근원적인 힘으로 보았다. 작은 포인트에서 큰 차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에 '오모테나시'라는 것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신(神)과 손님이 서로 같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손님에게 온 정성을 쏟겠다는 일본의 접객 문화가 상품이나 공공 시설에까지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 번도 마케터가 돼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어떤 것을 고민하는 출발 선상이라면 반드시 기존의 편견을 깨는 작업부터가 중요하다. 저렴하다는 인식을 고급화로 전환시키는 작업, 불편한 데서 오는 고민, 한 걸음 한 뼘의 차이에서 불편을 감소시키고, 다수의 편리와 이익을 생각해본다. 마케터들이 지금의 상품으로까지 최적화 시킨 데는 수많은 실패와 고민이 따랐겠다는 생각이 들고, 무심코 대하는 다이어리의 속지와 우산의 손잡이도 새롭게 다가온다. 좀더 차별을 두기 위해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떠올려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을 직접 고안하는 작업이라면 지금과는 달라진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저자처럼 콘텐츠 창작자의 시선이 아닌 고객의 상황에서 진심으로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