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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마흔입니다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마음철학 수업
키어런 세티야 지음, 김광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는, 중년의 도전을 이겨 내기 위해 배워야 하는 철학적 성찰을 다룬다. 이를 테면, 상실과 후회, 성공과 실패, 원했던 삶과 실제 삶에 대한 괴리감,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의 유한성,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공허함 등에 대한 의문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이다. 어느 세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허함을 풀어내는 것이니, 굳이 중년으로 국한할 필요는 없어도 되겠다. 하지만 안내서라고 해서 '명쾌한 대안'은 아니다. 근본적인 삶의 의문에 대해,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 처방전'이라 하면 옳다.
죽음이라는 불운은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부족하고 비었다는 의미에서 불운이다. -p174
전통적 불교도들의 관점에서는 무지(無知)가 핵심이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아나타(anatta)' 또는 '무아(無我)'라는 혁명적인 형이상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p229
'중년의 위기'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으나, 중년의 혼란이 야기한 중년의 위기에 대한 반발은 하나의 현상에 대한 과민반응일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의 필요성 속에서 중년의 위기는 행복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향과 마주해야 맞다. 중년은 불확실성과 퇴행이 아닌, 능력과 개인적 성장의 시기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중년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사상가로 성장한 '존 스튜어트 밀'과 성공회 신부였던 '조지프 버틀러'는 '이기주의의 역설'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즉,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것을 행복의 중요 요건을 보았다. 현대의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한 '경쟁과 결핍'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유형화되기 전에 그 시기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선택권을 갖는 것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미 잃어버린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잘되고 있음에도 불평하고 있는가? 원하는 전부를 가질 수 없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가지지 못한 것을 상쇄하거나 보상할 수 없는 것은 '약분 불가능성'의 결과이다. 상실감은 삶의 잉여에 대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서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실감의 대안은 무엇인지 정의해 본다. 여기서 '데이비드 놉'의 소설 레지널드 페린의 삶을 통해 비치는 것은, 삶은 도망칠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세상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실수와 불운, 실패 등으로 훼손된 삶에 대한 후회를 무시해야 한다. 내 삶을 힘들게 했던 과거의 사건들은 더 이상 바꿀 수 없으며, 두 번의 기회 역시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수나 실패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과거를 향한 집착은 망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나 수치심도 무뎌진다.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기대한 것보다 나은 무언가로 뒤바꾸는 것이다. 결정 자체는 나빴을지 몰라도 과거를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자세다. 실제 삶이 충분히 괜찮고 충분히 위험 회피적이라면 지금까지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은 당연히 합리적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불이익이 무엇일지 알고 있을 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하는 순간이야말로 고통이 수반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아이 대신에 가졌던 '올랜도'라는 책은 그 이상이다. 후회를 회피하려면, 회고에 작별해야 하는 이유다.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은 존재의 영원한 끝을 의미했다. 죽음의 공포를 불식시키는 것은 부재(존재하지 않음)라고 했다. 미겔 데 우나무노의 '죽지 않으려는 욕망'은 죽지 않기 위해 너무나 필사적이다. 불가능한 것을 고통스럽게 갈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불운처럼 한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과도한 운명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탐욕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원하는 바를 얻었다면, 욕망은 충족된 것이고, 행복해야 하는데, 방향을 잃고 우울해진다. 왜?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 또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완성에 집착하는 계획 때문에 삶이 고갈되는 문제는 성공에 이르러서야 중지할 수 있는 구조다. 사회심리학자 엘런 랭어의 말을 빌리지 않고라도, 현재에 집중하면 활력은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경험하고 있다. 미완료형 활동은 최종 상태를 목표로 하지 않으므로 삶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완료형 사고방식의 공허와 자기 파괴를 되돌려 주려면, 현재의 후광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불교의 팔정도와 서양식 사유가 만나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과정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활용해 봐야겠다. 결과가 없어도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저자는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도록 쉽게 썼다'고 하지만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몇 번씩이고 되뇌이며 곱씹어야 할 철학서에 가깝다. 단어와 문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피치못할 난해함이 자주 작용한다. 아무래도 저자의 직업이 MIT 철학 교수인지라, '존 스튜어트 밀'을 위시해 '루크레티우스', '미셸 드 몽테뉴', '시몬 드 보부아르', '엘리엇 자크', '알베르 카뮈', '수전 울프', '쇼펜하우어', '엘런 랭어' 등 철학가와 사상가들의 견해를 두루 담아 해석하고, 저자 자신의 철학까지 담았으므로 분량과 달리 진도는 더디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기의 중년들에게희망을 구축하기 위한 최상의 노력이므로 반갑게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