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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십대 후반, 한 때 척추질환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병문안을 온 친구들을 웃으면서 대할 수 없었다. 신음을 삼키며 반가운 표정을 짓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했다. 아프지 않을 때는 아플 때가 올까봐 괴로웠고 정작 아프기 시작하면 이성적 사고는 마비됐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백사장역의 황정민은 복수를 하러 찾아온 이병헌을 칼로 찌르며 한마디 한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나중에 결국 총맞아 죽지만 일개 건달도 인생이 고통이라는 진리를 알았다. 그러고 보면 고통이라는 감각적 표현은 인생의 전반을 아우르는 함축의 의미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하게도 작가 정보라는 고통과 쾌락을 근원적인 모습에서 하나라고 본 듯하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라고 했다. 실상은 괴롭지 않더라도 평상시의 모습이 고인것은 장차 해탈과 열반의 무아를 염두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풀자면 기본값이 고인데 거기서 벗어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제약회사와 신흥교단의 대립이 마치 선악의 문제인 것처럼 서술했지만 결국 고통만 있는 세상도, 쾌락만 존재하는 사회도 비정상의 문제임을 밝히려 한 듯 하다. 저주토끼 이후 단편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만큼 이 소설에서 직관적 재미를 기대했는데 범죄스릴러의 외형을 두룬 장편소설은 등장인물을 특정하기 어려운 난맥상으로 인해 술술 읽어나가기 어려웠다. 특히 형사, 제약회사, 교단등 등장인물과 단체의 정형화된 역할과 지향성은 클리셰 투성이의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서야 조각난 퍼즐을 맞춰보며 이야기를 힘겹게 정리해보지만 그 또한 고통스러운 독서의 과정을 되밟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