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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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처음 만났다. 박인환은 왜 하필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해야 하고 그녀의 서러운 이야기를 왜 들어야만 했는 지, 한 잔의 술을 마시면서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 동양과 서양, 수십년간의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각 세계1차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두 예술가의 마음에는 공통적으로 격변의 시기에서 느꼈던 불안과 허무가 짙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숨막히는 빅토리아 시대의 봉건적 억압에 좌절하며 주류인 남성적 문학관과는 달리 상상력을 발휘한 관념과 몽환의 이미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을 보면 마치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 들판과 호수와 창문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기승전결의 플롯을 무시하며 느낌과 요구에 따라 이미지가 펼쳐진다. 불과 100년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그 시대의 재기발랄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유행했던 남성 예술가의 창조의 원천인 '뮤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이 소설에는 남성의 보조적 창작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관념과 여성만의 예술을 창조하려 했던 20세기 초 원조 페미니스트의 실험정신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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