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럭으로 월 700만 원 번다 - ‘2,400명’ 창업인이 증명한 ‘배송 창업’ 성공 공식
김이화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평단으로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첫 느낌은 반신반의였습니다. 표지의 ‘월 700만 원’이라는 숫자가 흔히 보던 ‘월 천’과 달리 어딘지 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쉽게 따라가지지는 않았어요. 요즘 미디어에서 접하는 배송기사에 관한 뉴스는 대부분 안타까운 소식이었거든요. 사고가 났다거나, 과로로 쓰러졌다거나, 단가가 너무 빠듯하다는 이야기들이요. 그런 장면이 먼저 떠오르다 보니 ‘월 700’이라는 숫자는 도리어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책을 펼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만났다는 인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주변에 쿠팡 배달이나 택배 배송을 하시는 지인이 한두 분 생긴 것이 컸습니다. 경기는 예전부터 좋지 않았다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분위기예요. 잘 되는 회사는 잘 되고, 잘 되는 식당은 잘 되지만 그 외의 가게들은 대부분 무겁게 버티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에게 가게 수익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기예요. 그런 때에 ‘배송’이라는 일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저자 김이화 님은 배송인그룹 총괄팀장으로 7년 동안 2,400명 넘는 창업인을 코칭해 온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동기부여보다 데이터와 짜임새 있는 설명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24쪽에서 저자는 ‘월 천 신화’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월 천 신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불안의 시대가 만든 허상이다.” 처음엔 동경, 이어 조급함, 마지막엔 상처를 남긴다는 진단이 따끔했어요. 26쪽에서는 통계청 2022년 자료를 끌어와 월 1,000만 원 이상 급여자가 전체의 2.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을 인용합니다. “부는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 부는 천천히, 그러나 영구적으로 축적된다.” 27쪽의 마무리 문장은 오히려 위로가 됐습니다. “월 천 신화가 끝났기 때문에 이제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환상을 깨면서도 길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었어요. 36~38쪽에서는 택배 시장이 2019년 27억 건에서 2024년 59억 건으로 약 두 배 가까이 늘었고, 1인당 연간 116.3회의 배송을 받는다는 수치를 보여줍니다. 39쪽의 산업별 생존율 그래프에서는 운송업이 상위에 자리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어요. 40~42쪽에서는 새벽배송 시장이 2015년 4조 원에서 2024년 11.8조 원까지 성장했고, 변동성이 크지 않아 노선이 비교적 빨리 안정화된다는 산업적 특성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42쪽에서 저자는 배송이 더 이상 운에 의존하는 일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정리하는데, 그 대목에서 책 제목의 ‘월 7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처음으로 막연한 구호가 아닌 가능성 있는 목표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장밋빛만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4장 ‘모르면 100% 당하는 함정들’에서는 읽으면서 마음이 서늘해질 만큼 솔직했어요. 134쪽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적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137쪽에서는 ‘월 순수익 1,000만 원 보장’ 같은 문구가 경제적 불안에 놓인 사람들의 의심을 무력화하는 ‘심리적 방화벽’이 된다고 표현합니다. ‘이 기회만 놓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어떻게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지, 차분히 풀어내는 문장들이 오래 머물렀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145~147쪽 지입 사기 사례였습니다. 1톤 중고 경유탑차의 실제 시세는 1,000만 원 내외인데, 면접자는 3,500만 원에 차량을 떠안았고, 캐피탈 18.9% 고금리 대출까지 연결되었으며, 일감 배정마저 두 달간 미뤄졌습니다. 저자는 손해액을 차분히 계산해 보여줍니다. 차량 차액 2,500만 원, 5년간 이자 1,935만 원, 합 4,435만 원. “빚을 갚으려다 오히려 빚이 늘어나는 꼴이다.”라는 147쪽의 문장이 한참 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138~139쪽의 정보 비대칭 설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생수 한 통의 시장 단가가 950원인데, 본사가 원단가를 공개하지 않아 실제 기사에게는 700원, 심하면 600원까지 떨어진다는 이야기. 하루 수백 개를 나르는 기사가 월 단위로 100만 원 이상 손해를 보는 짜임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저는 ‘월 700만 원’이라는 숫자를 이렇게 다시 정리하게 됐어요. 가능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가능한 숫자는 아닙니다. 책 자체도 193쪽에서 “한 달에 700만 원에 가까운 수입”이라는 표현을 안정 궤도에 오른 사례에 한정해 쓰고 있고, 191쪽 마라톤 비유에서 “초반 5km가 가장 힘들다”고 말합니다. 192쪽의 “1년만 죽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문장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차량 할부, 유류비, 보험, 유지비, 세금을 빼고 손에 남는 ‘순수익’으로 700만 원에 닿으려면, 초기 적자 구간을 견디는 시간과 정확한 정보 위에서 내린 선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 준비 없이 막연히 뛰어들 경우, 책이 보여주는 손실의 경로는 꽤 또렷합니다. 시세보다 두세 배 비싼 차량 강매(148쪽), 고금리 캐피탈 대출(146쪽), 단가 비공개로 인한 매달의 누적 손해(138쪽), ‘수수료 없다’던 계약이 사실은 급여에서 공제되는 방식(139쪽), 대형 물류센터 전속이라더니 실제로는 ‘쓰레기 노선’이 배정되는 사례(139쪽). 어느 하나만 만나도 무거운데, 사기 설계는 이것들을 동시에 걸어두기 때문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143쪽의 한 줄이 그래서 더 묵직했어요. “사기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누군가의 선의나 제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

책의 후반부, 5장 ‘초심 각서’ 대목에서는 분위기가 또 달라집니다. 배송인그룹은 면접 당일에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해요(192쪽). 가능성을 부풀려 권하는 대신 “배송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최소 2~3달 이상은 군대 간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러니 지금 당장은 결정하지 마세요.”(193쪽)라고 말한다는 부분. 그리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종이 한 장을 건네며 ‘왜 이 일을 시작하려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힘들 때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적어 오라고 한다는 대목(194쪽). 법적 효력도, 회사 제출용도 아닌, 오로지 자신과 하는 약속. 누군가는 그 종이를 냉장고 문에 붙이고, 누군가는 트럭 운전석 선바이저에 끼워둔다는 묘사가 오래 떠올랐습니다.


루트매니저들이 실제로 적었다는 문장들도 인용해 두고 싶어요. “지금껏 모아둔 자본은 없지만, 까짓것 나도 1억 한번 모아 보자.” “내가 흘리는 오늘의 땀과 노력이 사랑하는 가족의 내일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197쪽의 마무리 문장은 서평의 마지막에 두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들에게 배송업은 로또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고, 도박이 아니라 계산된 선택이며, 환상이 아니라 땀으로 일궈낼 현실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이 책이 가장 강하게 건드린 지점은 ‘정보가 능력보다 앞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사무실에서도, 시장에서도, 결국 같은 노력을 했을 때 결과가 갈리는 가장 큰 변수는 정보의 정확성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어요. 저자는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33쪽). 이 한 줄이, 직장과 가정에서 새 출발을 가늠해 보는 또래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두 부류의 분들께 권하고 싶어요. 첫째, 자영업의 무게에 지쳐 새 길을 가늠해 보고 싶은 4050 가장들. 식당과 가게의 수익 부담이 점점 무거워지는 시기에, 배송이라는 선택지를 환상이 아닌 데이터로 살펴보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될 책입니다. 둘째, ‘월 천 신화’에 흔들려 본 적 있는 분들. 유튜브 알고리즘이 권하는 무자본 고수익 콘텐츠 앞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렸다면, 이 책의 24~27쪽과 4장이 좋은 균형추가 되어 줄 것 같아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의 끝자락, 햇살은 길어지고 거리에는 1톤 트럭이 부지런히 오갑니다. 그 안에 탄 누군가는 오늘도 ‘초심 각서’ 한 장을 선바이저에 끼워두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모습을 떠올리니, 이 책이 단순한 창업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정직한 안내서’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는 트럭으로 월 700만 원 번다>는 ‘월 천 신화’의 환상을 거두고 데이터·계약 구조·정보 비대칭을 차분히 펼쳐 보이며, 막연한 도전 대신 ‘준비된 사람에게만 열리는 길’을 정직하게 안내하는 책입니다.


#나비의활주로 #나는트럭으로월700만원번다 #김이화 #배송인그룹 #배송창업 #지입사기예방 #알선사기 #월천신화 #택배창업 #1톤트럭창업 #새벽배송 #루트매니저 #자영업대안 #40대후반직장인 #퇴직준비 #제2의인생 #북유럽카페서평단 #북유럽카페 #서평 #책추천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 시대의 사진 - 사진의 오래된 미래
김경훈 지음 / 북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청록빛 하늘색 바탕 위에 영문 제목 ‘PHOTOGRAPHY IN THE AGE OF AI’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그 위로 바다를 뛰어오르는 고래, 달 위의 우주인, 야구장의 함성, 그리고 그 유명한 ‘셀카 찍는 원숭이’가 콜라주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인 사진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 통신 김경훈 기자가, 25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AI 시대의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지 묻는 책이라고 했어요. 평일 저녁, 책상 한쪽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올려두고 표지를 펼친 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저 주말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동네 골목을 걷거나, 가족의 풍경을 한 컷씩 남기는 정도예요.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 한 번이면 ‘있을 법한 풍경’을 AI가 만들어 주는 시대잖아요. 제가 굳이 셔터를 누르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었던 차였습니다.

3장은 AI가 만든 이미지와 카메라가 기록한 사진의 차이를 차분히 짚어 줍니다. 김경훈 기자는 다운증후군 아버지가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는 ‘THEN’ 사진과, 그 아이가 자라 의사가 된 ‘NOW’ 사진을 예로 들며, 사진이란 시간과 감정과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진 ‘커다란 덩어리’를 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56쪽의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사진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실재하는 시간과 감정이 없습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어요. 같은 페이지의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가짜 사진은 경험 없는 세계의 산물입니다”라는 표현도 인상 깊었습니다. ‘경험 없는 세계’라는 말이, 회사에서 매일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제 일상 위로 겹쳐졌어요.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과, 실제로 누군가가 통과해 온 시간이 담긴 결과물은 분명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58쪽의 “사진에 담긴 찰나는 그 순간을 둘러싼 훨씬 큰 경험과 의미의 덩어리에서 잘려 나온 작은 조각입니다”라는 구절도 좋았어요. 셔터를 누르는 1초 뒤에는, 그 자리에 가기까지의 모든 길이 함께 들어 있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60쪽의 “사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감정을 기록하고 이 둘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체입니다”라는 정의도 오래 곱씹게 됐어요.


11장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리스 시프노스의 어느 계단에서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김경훈 기자는 본인이 2025년 국제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1만 2천여 장을 찍었지만 실제로 송고된 사진은 1퍼센트 남짓이었다고 고백해요. 초당 40프레임까지 찍히는 미러리스 시대, 사람의 동체 시력은 30프레임 정도라고 합니다.

196쪽의 “요즘은 내가 정확히 어느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인식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라는 문장은, 솔직히 제 이야기 같았어요. 가족 여행 갈 때마다 ‘일단 많이 찍고 나중에 고르자’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거든요. 198쪽에서 장자의 호접몽을 빌려 “내가 사진을 찍은 건지, 카메라가 사진을 알아서 찍어 주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습니다”라고 적은 대목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짚어 봤을 감정 같아 반가웠습니다. 양궁 경기에서 날아가는 화살을 누구든 찍을 수 있게 된 시대에, 결정적 순간이란 결국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와 사진가가 표현하려는 의미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어우러지는 일이라는 정의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셔터 찬스’라는 말이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라는 설명도 새로 알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운 좋게 잘 찍힌 한 장과, 판단과 우연과 기다림이 함께 만든 한 장은 같은 사진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16장은 사진을 ‘소통의 도구’로 다시 정의합니다. 같은 풍경 앞에 서도 어떤 사람은 멀리 펼쳐진 산자락을 담고, 어떤 사람은 그 옆에 서 있는 친구의 표정 한 조각만 잘라 냅니다. 무엇을 프레임 안에 넣고 무엇을 덜어 낼지 정하는 그 짧은 판단이, AI 시대에도 사진가만이 쥘 수 있는 무기라는 이야기였어요.

이 부분이 회사 업무와 묘하게 포개졌습니다. 기획안을 쓸 때도 결국 어떤 자료를 본문에 올리고 어떤 자료를 각주로 미루느냐가 글의 인상을 좌우하잖아요.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무엇을 보여 줄지 정하는 사람의 시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사진기자라는 직업적 맥락에서 풀어낸 사례가 많아서 일상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살짝 거리감이 드는 대목도 있었어요. 다만 사례마다 사진가의 윤리와 시선을 짚어 주기 때문에,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도 마지막엔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책을 덮고 며칠 동안, 출퇴근길 풍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어요. 예전에는 ‘예쁜 장면이면 한 장 찍자’ 정도였다면, 요즘은 ‘이 풍경의 어떤 덩어리를 남기고 싶은가’를 한 번 더 떠올리게 됩니다. 회사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 낼지 판단하는 사람의 자리는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듯합니다.


이 책은 휴대폰이든 카메라든 일상에서 사진 찍기를 즐기는 분들께 먼저 권하고 싶어요.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대해 조금 더 진중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AI가 만든 결과물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 사이에서 자신의 일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고민하는 직장인분들께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사진을 통과한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이 직접 걸어 본 시간의 가치를 다시 묻는 책이니까요.

한 줄로 정리하면, AI가 그럴듯한 이미지를 쏟아 내는 시대에 셔터를 누른 사람이 통과해 온 시간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 차분히 보여 주는 책입니다.

오월 중순, 창밖의 초록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있어요. 카메라를 들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이 책을 함께 손에 쥐고 걷는다면, 셔터를 누르는 한 번의 순간이 조금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의모든것 #김경훈기자 #북다 #로이터통신 #퓰리처상수상 #사진책추천 #AI시대사진 #포토에세이 #사진에세이 #북유럽카페 #40대독서 #직장인독서 #사진취미 #결정적순간 #앙리카르티에브레송 #사진의본질 #책추천 #서평 #신간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 멸종 실패기 - 죽을 운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지독한 인간들의 생존 세계사
유진 지음 / 빅피시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처럼 환절기와 초여름 사이를 오가는 5월의 끝자락, 퇴근길 지하철에서 한 권의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난 <인류 멸종 실패기>였어요. 표지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었습니다. 빈티지 판화풍 일러스트 안에 해골과 말 탄 사람, 깃펜을 든 손과 양팔을 펼친 인물이 한데 모여 있어서 박물관 전시 포스터를 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란 띠지에 박힌 굵은 제목 아래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라는 카피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는데,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튜브 영상 하나를 막 재생하기 직전 같은 작은 설렘이 일 만한 표지였어요.


저자 유진 님은 유튜브 채널 〈유진의 실화파일〉을 운영하면서 ‘박물관에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생활사를 추적해 온 분이라고 합니다. 책도 그 결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왕과 영웅 대신 ‘어떻게든 살아남은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웁니다. 위생과 식탁, 도시, 의료, 노동 네 파트로 나뉘는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은 단 하나였어요. 만약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며칠을 버틸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발을 멈춘 곳은 37쪽부터 시작되는 ‘납과 수은으로 빚어낸 하얀 얼굴의 비극’이었습니다. 16세기 잉글랜드 귀족 사회의 이상은 ‘창백한 도자기 같은 피부에 와인처럼 붉은 입술’이었고, 엘리자베스 1세는 그 기준을 납과 식초를 섞은 ‘베네치안 화이트’와 황화수은에서 추출한 붉은색 안료로 구현해 냈다고 해요. 짙은 화장의 계기는 1562년 천연두 감염 이후 얼굴에 남은 흉터였습니다. 41쪽에는 ‘여성 통치자였던 엘리자베스에게 흉터는 정치적 약점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한 사람의 결정을 단순한 허영으로 읽지 않게 만드는 대목이었어요. 1596년경 여왕의 외모를 늙거나 왜곡되게 묘사한 초상화를 제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기록까지 따라가다 보면, 초상화 속 그녀가 점차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상징적 존재로 변해 갔다’는 표현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깊게 박힌 문장은 42쪽 마지막에 있었어요. “외면의 완벽함을 위해 내면의 건강을 감수했던 선택. 그것은 개인의 전략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대가 요구한 가면이었을까요?” 일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매무새를 가다듬는 마흔 후반의 직장인이라면, 이 두 줄이 자기 이야기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사원증을 매만지고, 표정을 한 번 정리하고, 목소리 톤을 손보는 일은 사실 우리 모두 매일 하고 있는 작은 화장이니까요. 다만 우리에게는 납도 수은도 없을 뿐이지요.

다음으로 오래 머문 곳은 164쪽부터 이어지는 수술실의 풍경이었습니다. 19세기 초반 런던은 산업혁명과 도시화로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톱날에 다리를 베이거나 증기 펌프에 팔이 끼이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졌다고 해요. 부서진 뼈와 괴사한 다리에 의사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절단뿐이었습니다. 그것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 오래 남았어요. 마취가 없는 시대였으니 환자는 ‘수술대 위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칼이 뼈를 가르는 순간을 그대로 느껴야 했고’, 보조자 두세 명이 양팔과 다리를 눌렀습니다. 술이나 아편을 조금 먹이긴 했지만, 책은 그것이 통증을 줄이는 게 아니라 ‘단지 기절하기를 바라는 수준’이었다고 적습니다.


165쪽에서 만난 한 줄은 한참 페이지를 덮게 만들었어요. ‘이렇듯 마취도 소독도 없던 시대, 외과의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속도였습니다.’ 19세기 런던의 외과의 로버트 리스턴은 다리 절단을 28초 만에 끝낸 기록이 있다고 해요. 그는 수술을 시작할 때마다 “시간을 재시오, 신사 여러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속도전이 부른 사망률 300%의 일화가 이어지지만, 책은 진위를 따지기보다 ‘당시의 수술 환경이 얼마나 위험하고 광기 어린 속도전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라고 정리합니다. 덤덤한 문장이라 더 오래 책장에 손이 머물렀어요.

다행히 168쪽부터는 숨을 돌릴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1846년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윌리엄 모턴이 에테르 가스로 환자를 깊은 잠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고, 소식을 접한 리스턴은 런던에서 첫 에테르 마취 수술을 마친 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 미국산 발명품은 최면을 완전히 능가한다.” 이어서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영 심슨이 클로로포름을 자신과 동료들에게 직접 실험하다 모두 기절해 쓰러진 일화, 그리고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할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하며 일기장에 “축복받은 클로로포름. 그 효과는 진정시키고 평온하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라고 적은 기록이 나옵니다.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닫혀요. ‘외과 의사들은 이제 환자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걸 막기 위해 속도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두통에 진통제 한 알을 삼키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오후가,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오래 책장에 머문 곳은 250쪽부터 시작되는 어린 광부와 섬유 공장 아이들의 이야기였어요. 20세기 초 미국 산업의 동력은 ‘석탄과 값싼 노동력’이었다고 책은 적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무연탄 산지에서 광부의 일당은 2달러 남짓, 어린 소년들이 하루 9~10시간을 일하고 받은 돈은 약 75센트였습니다. 광산 회사는 그 아이들을 ‘작고 민첩한 노동력’이라 불렀어요. 사회학을 전공한 교사 출신 사진가 루이스 하인이 1908년 낡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남부의 작은 공장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는 장면도 깊게 남았습니다. 252쪽에 실린 그의 메모는 한 번 읽으면 잘 잊히지 않아요. “(석탄) 먼지가 너무 짙어서 때때로 앞이 안 보였고, 이 먼지는 소년들의 폐 깊숙이 침투한다. 감독자는 아이들 위에 서서 말을 듣게 하려고 (막대기로) 찌르거나 발로 차곤 한다.”

직장인으로 오래 살아온 입장에서 이 챕터가 유난히 길게 남았던 이유가 있어요. 254쪽에 ‘하루 10시간은 기본이었고 바쁘면 12시간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주 6일 근무가 원칙이었지만 일요일에도 불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숫자만 떼어 놓고 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가 청춘을 통과한 풍경과 그리 멀지 않아 보이거든요. 산업화의 심장이 누군가의 폐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지금의 안전 보건과 근로 기준법이 얼마나 많은 실패와 희생을 딛고 만들어진 것인지를, 새삼 차분히 곱씹게 됐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오래 남은 감각은 묘한 안도였어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마취 없는 수술대 위에서도, 납이 섞인 화장품 앞에서도, 톱밥이 깔린 진료실이나 12시간 교대의 방직기 앞에서도 오늘의 저는 하루를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시대에 태어나느냐’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느냐를 가른다는 사실이 새삼 또렷해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큰 행운을 안고 있는 셈이지요.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자극적인 일화가 워낙 강해서 읽고 난 직후에는 뒷맛이 무거울 수 있다는 점이에요. 다만 저자가 비극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통과해 여기에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계속 끌고 가기 때문에, 책장을 덮고 나면 무거움보다 단단한 감사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5월의 밤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고 책을 덮은 뒤, 따뜻한 물 한 잔을 받아 마셨어요. 깨끗한 수돗물, 켜기만 하면 들어오는 불, 가벼운 두통에 손에 잡히는 진통제. 누군가의 실패와 누군가의 발명이 켜켜이 쌓인 자리에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워지는 밤이었습니다.


무사히 출근하고 무사히 퇴근하는 오늘이, 사실은 오랜 실패 위에 겨우 얹힌 하루라는 걸 알려 주는 책.

#인류멸종실패기 #유진작가 #북유럽카페 #서평단 #서평 #북스타그램 #역사책추천 #생활사 #세계사 #교양서 #직장인독서 #4050독서 #에세이같은역사책 #유진의실화파일 #빅피시 #5월의책 #퇴근후독서 #밤에읽는책 #책추천 #네이버블로그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엽고 유용한 견종 도감 - 국제 공인 강아지 대백과 185
후지와라 쇼타로 지음, 장하나 옮김 / 모두의도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책 한 권이 도착했어요.

상자를 열기 전에는 ‘도감’이라는 단어 때문에 묵직한 책이 오겠거니 했는데, 막상 손에 들어 보니 생각보다 가볍고 단정했습니다. 후지와라 쇼타로가 쓰고 장하나가 옮긴 <귀엽고 유용한 견종 도감> 이야기예요.


표지에는 흰 바탕 위로 강아지 열한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카메라를 올려다보고 있어요. 웰시 코기 펨브로크,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 프렌치 불독, 시바이누, 비숑 프리제, 포메라니안, 잭 러셀 테리어, 말티즈, 아메리칸 코커 스패니얼, 치와와, 페키니즈, 미니어처 슈나우저까지 작은 이름표가 또박또박 붙어 있어서, 마치 입학식 단체 사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을 받아 든 순간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였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대백과인데도 사이즈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어요. 컬러 인쇄라 무게는 조금 나가는 편이지만, 도서관에 꽂혀 있는 두꺼운 백과사전처럼 크지 않아서 가방에 넣어 출퇴근길에 들고 다닐 만한 부피였습니다. 평일 저녁 식탁 한쪽에 펼쳐 놓고 아이들과 같이 들여다보기에도 적당한 크기였어요.


저희 집에는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요크셔 테리어와 자랐던 기억도 있고요. 그래서 책을 펼치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페이지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44쪽 「포메라니안」부터 펼쳤어요. 포메라니안의 기원이 북쪽 지방의 대형 스피츠계 견종이라는 설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 집에서 까불대는 작은 아이의 조상이 한때는 덩치 큰 썰매개였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습니다. 독일 포메라니아 지방에서 소형으로 개량되었다는 점, 마리 앙투아네트와 모차르트, 빅토리아 여왕이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이 “그 사람들도 우리 강아지랑 비슷한 애를 키웠어?” 하고 묻기도 했어요. 책 한 권 덕분에 저녁 식탁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늘었습니다.


같은 견종을 다룬 다른 페이지에서는 “활기차고 천진난만하면서도 의외로 똑똑하며 학습 의욕이 있다”라는 한 줄이 오래 남았어요. 보호자 곁에 꼭 붙어 다니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는 묘사는, 저녁마다 거실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면 그 시간만 되면 크게 짖으며 재촉하는 경우가 있어 산책 시간을 일정하지 않게 해 두면 헛짖음을 줄일 수 있다는 조언, 골절 사고가 일어나기 쉬워 계단이나 단차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 눈물이 자주 흘러 눈 관리가 필요하고 어릴 때 이빨이 빠지는 경우도 많아 치아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는 부분은 메모해 두고 싶을 만큼 실용적인 정보였어요. 44쪽에는 이중모라 추위에는 강하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에는 약해,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실내나 차량 안에서는 열사병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적혀 있어 여름이 가까워진 요즘 특히 와닿았습니다.


요크셔 테리어 챕터도 손이 자주 갔어요. 49쪽에는 ‘요키’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점, 19세기 중엽 영국 요크셔의 공업 지대에서 공장이나 광산의 쥐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소형 사냥개가 조상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어릴 때 함께 자란 그 작고 까만 아이가 사실은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 바닥을 누비던 개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옛 기억이 한결 입체적으로 다가왔어요.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주 짖으며 온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성격 묘사를 읽다가는 옛 모습이 떠올라 혼자 살짝 웃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익숙한 견종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표지에는 낯익은 얼굴들만 모여 있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처음 보는 이름들이 줄지어 등장합니다. 차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이렇게 많은 강아지가 있구나 싶어 놀랐어요. 154쪽 「웰시 코기 카디건」 챕터에서는 1934년까지 펨브로크와 같은 견종으로 취급되었다는 역사가 흥미로웠습니다. 둘 다 소몰이를 하던 개였지만 펨브로크는 소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도록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미를 했던 반면, 카디건은 꼬리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는 차이가 적혀 있어요. 표지에 등장하는 펨브로크와 비교해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109쪽 「도베르만」도 기억에 남는 챕터예요. 사나운 인상이지만 다정하고 순하다는 부제가 붙어 있고, 우리가 떠올리는 뾰족한 귀와 짧은 꼬리는 사실 단이와 단미의 결과일 뿐이며 본래는 둥근 귀와 길게 뻗은 꼬리를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 따라옵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미 단이와 단미가 금지되어 있다는 문장도 함께 적혀 있어, 외형만 보고 단정 짓던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페이지였어요. 비슷한 결로 153쪽 「스태포드셔 불 테리어」 챕터에도 “사나워 보이지만 명랑하고 다정하다”는 부제와 함께, ‘핏 불’ 계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나운 개라는 인식이 덧씌워지게 되었다는 설명이 균형감 있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214쪽 「타이 리지백 독」에서는 도감의 솔직함을 보았어요. “일반 가정에서 기르기에는 상당히 어렵다”라는 부제 아래, 똑똑하지만 반려견이라기보다 자립심이 강한 파트너에 가까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이 적혀 있습니다. 귀여움만 부풀리지 않고, 권할 수 없는 견종은 권할 수 없다고 적어 주는 태도가 도리어 믿음직스럽게 다가왔어요. 107쪽 「잉글리시 코커 스패니얼」 챕터의 “응석꾸러기지만 참을성이 강하다”라는 부제도 좋았습니다. 보호자에게는 응석을 부리지만 상황에 따라 참고 얌전히 기다리는 면도 있어, 먼저 그 마음을 헤아리고 보살펴 주면 무척 기뻐한다는 묘사가 인상에 남았어요.


견종 페이지 못지않게 앞쪽 ‘관련 용어’ 코너도 알찼습니다. 14쪽부터 17쪽까지 서클, 하우스, 배변 시트, 캐리어, 리드줄, 슬리커 브러시, 핀 브러시, 콤, 그루밍, 도그런, 털갈이 시기, 단이, 단미, 영역 표시, 헛짖음, 필라리아, 광견병, 백신 주사, 항문낭, 허딩 독, 목양견, 스피츠, 테리어 같은 용어가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견종 페이지에서 마주친 단어를 앞쪽으로 돌아가 다시 확인하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도감이 단순한 사진첩에 머물지 않고, 보호자가 알아 두면 좋은 어휘까지 함께 챙겨 준다는 점이 좋았어요.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FCI 공인 185견종 기준이다 보니 한국에서 자주 마주치는 믹스견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정체성이 ‘공인 견종 도감’이니, 아쉬움이라기보다 책의 방향이라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저녁, 거실에 책을 펼쳐 놓고 아이들과 함께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요즘 작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4번이고, 어릴 적 함께 자란 그 친구가 6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한 책이에요.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견종을 골라 “이건 내 거”라고 찜해 두고,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옵니다. 책 한 권이 가족의 저녁을 이렇게 묶어 줄 수 있다는 점이, 도감이라는 장르가 보여 주는 의외의 얼굴이었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분은 두 분류로 좁혀집니다. 먼저 반려견을 처음 들이려고 견종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께 권하고 싶어요. 외형의 귀여움만 보고 결정했다가 성견이 된 후 당황하는 일을 줄여 주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에요. 그리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를 둔 가정에도 좋습니다. 거실 한쪽에 펼쳐 두고 함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아이가 외워 오는 견종 이름이 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

5월의 햇살이 점점 길어지고, 저녁 산책길에 마주치는 강아지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진 요즘이에요. 산책 중에 만난 낯선 견종의 이름을 책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우리 집 식탁 위에 머무는 시간은 한참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펼칠 수 있는, 다정한 도감 한 권.

#귀엽고유용한견종도감 #견종도감 #모두의도감#강아지대백과 #강아지도감 #반려견도서 #FCI공인견종 #185견종 #북유럽카페서평단 #도서리뷰 #반려견공부 #포메라니안 #요크셔테리어 #웰시코기 #도베르만 #예비반려인 #아이와함께읽는책 #반려동물책추천 #후지와라쇼타로 #장하나번역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를 위한 일론 머스크의 미래 예측 50가지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AI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자료를 정리할 때도 자연스럽게 챗봇 창을 띄우게 돼요. 머스크가 만든 AI 그록도 직접 써봤습니다. 그록으로 이미지도 만들어 보고 영상도 뽑아 보면서, 이 사람이 그리는 그림이 어떤 결인지 어렴풋이 느꼈어요. 사실 머스크의 인터뷰를 작정하고 챙겨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유튜브와 쇼츠에 워낙 자주 등장하다 보니, AI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트렌드를 끌고 가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인상이 자연스럽게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 소식을 들었을 때도 호기심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받았어요. 최경수 작가의 <10대를 위한 일론 머스크의 미래 예측 50가지>(메이트북스)입니다.


택배 상자를 열자 노란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쨍한 옐로우 바탕에 머스크의 흑백 일러스트가 정중앙을 차지하고, 그 옆으로 로켓과 전구, 휴머노이드 같은 아이콘이 떠다닙니다. "너,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준비됐어?"라는 띠지 문구가 한 번 멈칫하게 만들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작정하고 정리해 둔 지식 한 묶음 같다는 인상이었어요.

10대를 위한 책이라고 해서 가볍게 펼쳤는데, 의외로 어른인 제가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페이지가 많았습니다. 머스크가 던진 50가지 예측을 AI와 직업, 로봇과 일상, 국가와 돈, 인간과 기술, 우주와 문명이라는 다섯 갈래로 묶어서, 게임 업데이트 공지나 클라우드 백업 같은 비유로 풀어내는 구성이에요. 각 꼭지의 끝에는 '내일을 위한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고 손을 내미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장 오래 멈춰 있던 페이지는 1장의 '명문대 졸업장이 방탄조끼가 안 되는 시대'였습니다. 33쪽에서 작가는 머스크의 2026년 1월 팟캐스트 '문샷' 발언을 인용해요. "화이트칼라 노동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입니다. 원자를 움직이는 일이 아닌 한, AI는 지금 당장 그런 일자리의 절반 이상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일이라면 모두 해당됩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자료를 분석하고, 회의록을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채워 온 사람으로서 이 문장을 그냥 넘기기는 어려웠어요. 책은 곧이어 ‘포클레인이 들어오면서 인간의 팔다리 근육이 쓸모없어졌듯, 이제는 AI가 인간의 지능 근육을 대신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라고 말합니다. 팔다리가 아니라 머리가 대체된다는 비유 앞에서, 발밑이 슬그머니 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아이디어가 귀해지고, 창의력이 진짜 실력이 된다’ 꼭지는 그 불안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줍니다. 46쪽에서 머스크는 ‘충분한 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재료 비용에 가까워집니다. 결국 유일하게 희소한 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들기로 결정한 것들, 예를 들어 독창적인 예술 작품 같은 것뿐입니다.’라고 말해요. 부의 공식이 ‘얼마나 성실히 일하느냐’에서 ‘얼마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부모 세대가 외워두라고 한 ‘좋은 대학–대기업–월급 저축–집 마련’ 공식이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단언 앞에서, 제가 들고 있던 답안지를 다시 들춰 보게 됐어요.

다만 작가는 한쪽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47쪽에서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타고난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돈으로 줄을 세우던 세상에서 창의력으로 줄을 세우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진짜 공평한 전환인지,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라고 짚어 둬요. 머스크의 예측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고, 반대편 이야기도 같이 적어두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가 안심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어요.


2장에서는 ‘AI가 나를 가장 잘 아는 단 하나의 친구가 된다’ 꼭지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작가는 2023년 11월 영국 AI 안전 서밋에서 머스크가 했던 말을 가져와요. ‘AI는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자신보다도 더 잘 알게 되죠. 그렇게 되면 AI는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아들 중 한 명은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AI 친구는 그 아이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한 말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 뒤에 이어지는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며, 화내지 않고 기다려주며,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라는 정의도 인상에 남고요.

그런데 작가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64쪽에 ‘AI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고, 절대 상처 주지 않고, 절대 지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인간관계는 불편하고 상처받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깊어지는 법인데, 완벽한 AI 친구에 익숙해진 사람이 불완전한 인간 친구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외로움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회사 동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입장에서 이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어떤 날은 회의실에서 받은 까칠한 한마디 때문에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가도, 다음 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슬그머니 풀리는 그런 시간을 저는 꽤 좋아하거든요.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만들어지는 결이라는 걸, 책을 읽으며 새삼 떠올렸어요.


5장의 ‘인류는 멸종을 막기 위해 화성을 백업 서버로 사용한다’ 꼭지는 자녀를 떠올리게 한 대목이었습니다. 머스크는 2021년 12월 타임지 ‘올해의 인물’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두 번째 행성이 필요합니다. 지구에 재앙이 닥쳤을 때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복구할 수 있는 ‘백업 복사본’을 화성에 만들어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213쪽의 ‘지구는 로컬 드라이브, 화성은 외부 백업 서버’라는 공학적 비유가 직관적이라 한 번에 와닿았습니다. 동시에 215쪽에서 작가가 던지는 균형추도 좋았어요. ‘당장 오늘의 생존이 시급한 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보험료를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는 문장과, ‘예산을 집행하는 결정권자라면 어느 쪽에 먼저 투자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이 그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어른인 제가 답해야 할 종류의 것이지만, 정작 그 미래를 더 길게 살아낼 사람은 우리 아들딸입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아이 책상 위에 이 책을 슬쩍 올려두는 거였어요. ‘너 이거 한번 읽어봐’라고 말하기보다, ‘아빠가 읽었는데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라고 운을 떼는 편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정답을 외우라는 책이 아니라 같이 질문을 나눠보자는 책이니까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입장에서 한 가지 더 적어두고 싶은 게 있어요. 머스크의 예측이 전부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35쪽에서 작가는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적어두는데, 이 한 줄은 10대만 새겨야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보고서 양식을 반복해서 채우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말이었어요.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둘 떠올랐습니다. 먼저 진로를 고민하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 다음 세대와 미래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이 책 한 권이 작은 다리가 되어줄 거예요. 그리고 저처럼 사무직으로 오래 일해 온 40대 직장인들. 막연한 불안 대신, 내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더 던져야 할지 정리해 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5월의 햇살이 길어지면서, 퇴근길 하늘이 꽤 늦게까지 푸르게 남아 있어요. 그 빛 아래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됩니다. 노란 바탕에 박힌 머스크의 얼굴이 처음 책을 받았을 때보다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오늘 저녁에는 아들딸과 식탁에 마주 앉아, 책 속의 질문 하나를 슬쩍 꺼내볼 생각입니다.


미래는 정해진 답이 아니라, 같이 나누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10대를위한일론머스크의미래예측50가지 #최경수작가 #메이트북스 #북유럽카페서평단 #일론머스크 #미래예측서 #AI시대를사는법 #그록 #직장인독서 #40대독서 #사무직생존법 #자녀와함께읽는책 #청소년추천도서 #학부모추천도서 #진로고민 #창의력시대 #화성이주 #뉴럴링크 #서평블로그 #메이트북스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