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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맛있게, 덮밥 ㅣ 착한 레시피북 2
맛있는 테이블 지음, 박원민 사진, 육정민 / 참돌 / 2026년 4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주말이면 으레 짜파게티 한 봉지를 뜯었습니다. 물 올리고, 면 삶고, 분말 털어 비비면 끝이니까요. 그렇게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배는 부른데 속이 어쩐지 허전했어요. 면보다 밥이 좋은 사람인데, 평일 내내 회사 구내식당과 배달앱을 오가다 보니 정작 주말에는 가장 손쉬운 한 봉지로 도망치게 되더라고요.
<오늘도 맛있게, 덮밥>은 그런 주말 점심의 풍경을 바꿔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았는데,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거 들고 다니기 좋겠다’였습니다. 예전에 즐겨 읽던 <좋은 생각>과 판형이 거의 비슷해서, 작은 가방이나 핸드백에도 쏙 들어가요. 두께도 적당해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슬쩍 꺼내 보거나,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펼쳐 두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요리책이라고 하면 큼지막한 양장본부터 떠올리던 저에게는 꽤 신선한 만남이었어요.

펼쳐 보면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한 메뉴에 한 페이지, 사진 한 컷, 재료 목록, 네 줄짜리 조리법이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사진은 식욕을 자극하는 컬러로 또렷하고, 글은 ‘이만큼 넣고, 이렇게 볶고, 밥 위에 올리면 끝’ 식으로 요점만 짚어 줍니다. 요리책을 펼칠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길게 늘어진 설명을 읽다가 의욕이 식어 버리는 일이 여기서는 잘 일어나지 않아요. 처음 보는 메뉴인데도 ‘이 정도면 저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책의 도입에서 계량 도구와 조리 도구를 따로 다뤄 둔 점도 좋았어요. 큰술 한 술이 약 15ml, 작은술 한 술이 약 5ml라는 기준을 박스로 또렷이 박아 두고, ‘약간’은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는 한 꼬집 정도라고 친절하게 풀어 줍니다. 감각이나 손맛이라는 말 뒤에 숨기 쉬운 부분을 숫자로 잡아 주니, 요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볼 수 있어요. 칼, 가위, 채칼, 집게, 붓 같은 도구들이 어떤 자리에서 쓰이는지 한 줄씩 짚어 두는 부분도 반가웠습니다. 부엌 서랍에서 잠자던 도구들이 ‘아, 너 여기 쓰는 거였구나’ 하고 살아나는 기분이랄까요.
책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장으로 나뉘어 있어요. 봄에는 마늘종과 미나리, 주꾸미와 키조개 같은 재료가 등장하고, 여름에는 토마토와 아보카도, 가지와 애호박이 주인공이 됩니다. 가을은 고등어와 연어, 뿌리채소가 그릇을 채우고, 겨울에는 해물과 만두, 소고기가 든든하게 올라가요. 계절 따라 식탁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제가 얼마나 같은 메뉴만 빙빙 돌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눈이 오래 머문 메뉴는 주꾸미 덮밥이었어요. 알이 꽉 찬 봄의 주꾸미를 살짝 데쳐, 파기름을 낸 팬에 양파와 김치를 함께 볶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로 잡은 양념을 둘러 마무리하는 흐름인데, 마지막에 깻잎과 김가루를 흩뿌려 내는 그림이 그릇 안에서 봄이 펄펄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칼칼한 양념과 고소한 파기름, 갓 지은 밥의 김이 어우러지는 상상만으로 입맛이 돌더라고요.
강된장 덮밥도 꼭 한 번 해 보고 싶은 메뉴로 표시해 두었어요. 구수한 된장에 다진 고기와 채소를 자작하게 조려 밥 위에 얹고, 알배추나 상추에 싸 먹어도 좋다고 안내해 두었는데, 책의 표현대로 ‘정겨운 고향의 풍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한 그릇입니다. 어릴 적 시골집 마루에서 먹던 그 맛이 떠올라, 어쩐지 가슴 한쪽이 먼저 따뜻해졌어요.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평일 저녁, 가스불 앞에서 십오 분쯤 손을 놀려 한 끼를 차려 내는 모습. 주말 아침 늦게 일어나 가족과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드는 식탁. 그리고 요즘처럼 햇살이 좋은 오월과 유월 어느 주말, 도시락 통에 덮밥을 옮겨 담아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떠나는 그림까지요. 김밥이 아니어도, 샌드위치가 아니어도, 정성껏 만든 덮밥 한 그릇이면 충분히 근사한 도시락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이 ‘요리를 잘하게 만드는 책’이라기보다 ‘요리를 시작하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는 거였어요. 거창한 한 상을 차리라고 다그치지 않고, 오늘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그릇 하나만 따뜻하게 채워 보자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거든요. 짜파게티 한 봉지로 때우던 주말이 자꾸 떠오른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동안 ‘귀찮아서’라고 미뤄 둔 일들이, 사실은 ‘몰라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책이지만 굳이 두 그룹을 꼽아 보자면, 먼저 혼자 사는 자취생과 1인 가구 직장인이 떠오릅니다. 2인분 기준이라 한 끼는 그날 먹고 남은 한 끼는 다음 날 도시락으로 옮겨 담기에도 좋고, 네 단계 조리법이라 퇴근 후의 짧은 시간에도 부담이 적어요. 다른 한 갈래는 주말마다 가족 한 끼를 고민하는 분들이에요. 매번 같은 국과 반찬 사이에서 메뉴를 정하지 못해 헤매던 식탁에, 계절 재료로 한 그릇 잘 채우는 새로운 선택지를 더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밖으로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오월 끝자락, 다음 주말에는 짜파게티 봉지 대신 주꾸미 한 봉지를 사들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어 봅니다. 정성껏 차린 한 끼가, 헛헛하던 주말 오후를 조금은 든든하게 채워 줄 것 같아요.
덮밥 한 그릇이면 충분한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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