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
김진하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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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들었을 때, 표지의 노란 하늘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회색 배경 위에 어린 왕자의 모자 실루엣이 떠 있고, 그 위로 ‘Le Petit Prince’라는 글자가 얇게 놓여 있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이 책을 만났는데, 신청한 이유는 사실 단순해요.

어릴 적에 읽었던 <어린 왕자> 동화책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였거든요. 양과 모자, 장미 한 송이, 여우. 이 정도가 흩어진 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출간된 이 책을 통해 이번엔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고 싶었어요.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는 서울대 불어교육과 김진하 교수님이 오랫동안 프랑스 문학과 <어린 왕자>를 연구한 결과를 풀어낸 책입니다. 1부 ‘어른이 된다는 것’에서 6부 ‘만남과 이별이 가르쳐주는 것’까지, 스물일곱 개의 장면을 따라가며 사랑·관계·가치·고독·시간을 짚어 갑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익숙한 동화의 한 장면이 마흔 후반의 제 일상과 겹쳐 있었어요.

가장 마음에 오래 머문 장은 14장 ‘다섯 번째, 번아웃 점등인’이었습니다. 별이 점점 빠르게 돌아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꺼야 하는 점등인의 모습이, 야근을 마치고도 다음 날의 회의 자료를 떠올리는 제 모습과 겹쳐 보였어요. 그런데 저자는 그 점등인을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지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뿐이야. 아마도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일에 종사하기 때문일 거야.”라는 문장을 길게 풀어내며, 점등인이 가로등을 켜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한 개의 별이 되고 한 송이 꽃이 된다고 말합니다. 154쪽의 “현대의 직장인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몰두하며 여유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점등인을 보는 듯하다.”라는 구절에서는 잠깐 책을 덮었어요. 한참 멍하니 그 문장을 들여다봤습니다.


21장 ‘기꺼이 길들겠다는 말’에서는 ‘길들임(apprivoiser)’이라는 단어를 라틴어 privatus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들여다봅니다. 사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의미, 그러니까 ‘많은 비슷한 존재 가운데 단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었어요. 저자는 몽당연필과 헌 구두를 예로 들어 길들임을 설명하는데, 오래 신어서 모양이 발에 맞게 자리 잡은 구두가 차가운 길바닥과 계단을 견디며 주인을 지탱한다는 비유 앞에서 한참 들여다봤어요. 신발장 앞에 놓인 제 낡은 구두가 떠올랐거든요. 209쪽의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길들이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라는 문장과 212쪽에서 ‘의례’가 없으면 모든 날이 비슷해진다고 말하는 대목은, 주말에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식사 시간이 왜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길들임은 결국 이별과 짝을 이룬다는 214쪽의 “한번 길들면 진심이 된다. 몸의 행위가 마음의 싹을 틔우는 법이다”라는 문장도 오래 곱씹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에 다다라 6부 결말부에서 저자는 ‘마음의 신비’를 이야기합니다. 어린 왕자가 떠난 뒤, 그 별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별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난다고요. 한 존재를 사랑하던 마음이 인접한 것들로 번지고, 마침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된다는 흐름이 21장의 길들임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302쪽의 “그러나 어른들은 아무도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는 살짝 멋쩍은 웃음이 나왔어요. 매일의 보고서와 숫자에 묶여 정작 중요한 것을 흘려보내고 있던 제 모습이 비쳤거든요. 그리고 303쪽의 마지막 문장, <어린 왕자>는 시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책 한 권을 닫는 손에 잔잔하게 남았습니다. 풍부한 세계를 숫자로 요약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저자의 당부가, KPI 숫자에 익숙해진 저에게는 묘하게 따끔한 문장이었어요.

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장면마다 깊이 풀어내는 만큼 어떤 부분은 학술적인 결이 도드라져서, 가볍게 한두 챕터씩 천천히 읽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숨에 읽기보다는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에 한 장씩 펼치는 책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두 분에게 특히 권하고 싶어요. 먼저 하루를 점등인처럼 켜고 끄며 살아가는 40대 직장인에게요. 하루하루의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154쪽의 점등인 이야기가 조용한 위로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의 기억이 흐릿해진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동화로 만났던 장면들이 어른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는 경험은, 잊고 지냈던 어릴 적 나와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어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저녁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진 요즘입니다. 퇴근길 가로등 아래를 걸으며 이 책의 점등인을 떠올려 보시면 좋겠어요. 천천히 읽어 내려갈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한 저녁이 될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어린 왕자>는 동화가 아니라, 시처럼 천천히 음미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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