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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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여러 신간 사이에서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문학 앞에 ‘위험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게 호기심 가득하고 매력 있어 보였어요. 표지도 한몫했습니다. 분홍빛이 도는 배경 위에 저울, 뱀, 폭탄, 수갑, 후드를 쓴 형체 같은 아이콘이 흩뿌려져 있고, 그 위로 “인류는 단 한 번도 완벽한 적이 없었다”라는 문장이 박혀 있는데, 음산하면서도 책장을 빨리 열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저자는 유튜브 채널 ‘다크모드’를 운영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평소 ‘쓸데없지만 살짝 어두운 지식’을 다루는 채널의 색깔이 책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다만 영상보다 호흡이 깁니다. 한 챕터 안에서 사건의 배경, 인물의 결정, 그 결정이 빚어낸 오답까지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명은 발전의 기록’이라는 평소 생각이 슬쩍 흔들리고 있더라고요.


책은 형벌, 감옥, 완전범죄, 전쟁 무기라는 네 개의 큰 갈래로 묶여 있습니다. 부제가 ‘인류학적 오답 연구’인데, 읽다 보면 이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 챕터의 소제목부터가 ‘절차라는 이름의 면죄부’, ‘비명이 음악이 될 때’, ‘완벽해서 무서운 감옥’ 같은 식이라, 목차만 훑어도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짐작이 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PART 2의 ‘ADX 플로렌스 — 완벽해서 무서운 감옥’ 챕터에 가장 오래 머물렀어요. 미국 콜로라도 고원에 1994년 6천만 달러를 들여 세운 ‘슈퍼맥스’ 교도소 이야기인데, 수용 인원은 490명이지만 한 번도 가득 찬 적이 없고, 두 동은 인원이 줄어 폐쇄됐다고 합니다. 셀 크기는 2.1m × 3.7m, 콘크리트로 만든 침대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침대 양쪽에는 사람을 묶기 위한 4점 신체구속 장치가 설계 단계부터 내장되어 있다고 해요. 책에서 이 대목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자국 수감자에게 허락한 침대에는, 사람을 묶기 위한 장치가 설계 단계에서 내장되어 있다”라고 적어둔 문장이 한참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음에 박힌 건 규율 부분이었어요. 하루 22시간에서 23시간을 방 안에서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행동 심사를 받습니다. 30일을 완벽하게 복종하면 다음 달의 통제가 아주 조금 풀리는데, 29일을 잘 견디고 마지막 하루에 사소한 위반 하나만 있어도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책은 이걸 두고 “시간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한 복종이다”라고 적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회사의 한 해 평가가 떠올랐어요. 1년 내내 잘 굴러가다가 연말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던 어떤 해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잘 적응한 사람’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했는지 같은 것들이요.


ADX는 ‘설계 실패가 아니라 설계가 너무 성공해서 생긴 역설’이라는 책의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 사이의 접촉을 전부 차단해 위험을 제어하려 했는데, 그 완벽함 때문에 최소 9명의 수감자가 콘크리트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12년에는 11명의 집단소송이 있었으며 2016년 합의로 정신질환 선별 절차가 개선되고 그룹 치료와 자살 방지 프로그램이 도입됐다고 해요. 완벽을 향해 갈수록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긴다는 점이, 이상하게 일터의 장면들과 겹쳐 보였습니다. 매뉴얼이 촘촘해질수록 정작 사람의 자리는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ART 4의 ‘마지노선 — 지난 전쟁의 완벽한 정답’ 챕터도 같은 결로 읽혔어요. 1차 대전 참호의 교훈을 바탕으로 1930년대 프랑스가 동부 국경에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린 거대한 방어선이지만, 정작 독일군은 그 옆 아르덴 숲을 돌아 진격했고 프랑스는 6주 만에 무너졌다고 합니다. 마지노선은 기술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우회당했을 뿐이에요. 책은 이 대목에서 “마지노선이 남긴 것은 콘크리트였지, 정답이 아니었다”라고 정리합니다. 지난 전쟁의 정답을 다음 전쟁에 그대로 가져다 놓는 순간, 완벽할수록 더 완벽하게 실패한다는 이야기였어요.


마흔 후반에 이 챕터를 읽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때 분명히 통했던 일하는 방식과, 지금도 그게 여전히 정답일 거라 믿고 있던 제 안의 노하우가 떠올랐거든요. 마지노선이 무너진 건 콘크리트가 약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콘크리트 옆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는 점이 오래 남았습니다.


PART 3에서는 1924년 시카고의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이 기억에 남았어요. 명문대 학생 두 명이 ‘완벽한 범죄’를 설계했지만, 현장에 떨어뜨린 한 쌍의 흔치 않은 안경 하나로 모든 게 드러납니다. 그들의 동기는 돈도 원한도 아니었고, 자신들은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고 합니다. 책 전체를 떠받치는 문장이 이 챕터에서 한 번 더 분명해졌습니다. 내가 옳다고 가장 확신할 때,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였어요.


읽으면서 살짝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소재 자체가 강하다 보니 잔혹한 묘사가 이어지는 챕터에서는 잠들기 직전에 펼치기가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제목 그대로 ‘잠 못 드는’ 책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정직한 셈이지만, 식사 직후나 늦은 밤보다는 낮 시간에 읽는 쪽을 권하고 싶었습니다. 또 한 챕터씩 짧고 강렬하게 떨어지는 구성이라 몰입은 좋은데, 몇몇 사건은 조금 더 깊은 배경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들었어요.


그래도 다 읽고 나서 남은 감정은 의외로 차분했습니다. 인류가 저질러 온 오답들의 목록인데, 그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완벽하지 못한 것이 인간의 증거’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회사에서 작은 실수 하나에 며칠을 끙끙대던 제 자신에게도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었어요. 인류가 단 한 번도 완벽한 적이 없었다면, 저 한 사람 정도 흔들리는 건 사실 그렇게 큰일도 아닌 거였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분은 두 부류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자극적인 소재나 강렬한 제목에 끌리는 분들, 공포 영화나 액션 장르를 강심장으로 잘 보시는 분들에게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래된 매뉴얼과 완벽주의 사이에서 조금 지쳐 있는 직장인분들에게도 의외의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완벽이 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잔혹사라는 먼 길을 돌아 들려주는 책이거든요.


요즘 5월의 늦은 저녁은 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풀 냄새가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그런 밤에 스탠드 하나 켜고 이 책을 한 챕터씩 끊어 읽다 보면, 바깥은 환한 봄인데 책 속만 깊은 밤 같아요. 그 온도차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완벽을 좇아온 인류의 오답 노트,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도 조용한 위안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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