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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사랑은 오해다 ㅣ 세계척학전집 4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사람은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어긋나는 걸까. 회사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요. 그러던 차에 'BOOK U LOVE' 카페에서 이 책을 알게 됐습니다. <세계척학전집 사랑은 오해다>, 이클립스 작가가 쓰고 모티브에서 나온 책이에요.

표지가 와인색이라 묵직해 보이는데, 막상 펼쳐보면 의외로 가볍게 읽혀요.
부제가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사랑의 공식'인데, 이름은 장난스러워도 안에 다루는 내용은 꽤 진지합니다.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메커니즘'으로 본다고 책이 스스로 말하더라고요. 철학자, 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의 이론을 한 챕터에 한 명씩 짚어가는 구성이에요. 플라톤부터 가트맨까지요.

재밌었던 건 책 앞에 '이 책을 읽는 법'이라는 가이드가 있다는 거예요. 순차적으로 읽어도 되고, 지금 내 자리에서 가장 가슴을 찌르는 챕터부터 골라 읽어도 된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각 챕터가 독립적으로 완결된다고요. 저는 후자 쪽으로 갔어요. 솔직히 이 나이쯤 되니 끌림이 어쩌니 하는 얘기보다, 관계가 왜 자꾸 같은 자리에서 어긋나는지가 더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Part 3와 Part 4 위주로 읽었습니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챕터가 가트맨의 '관계 공식'이에요. 존 가트맨이라는 심리학자가 워싱턴 대학교에 'Love Lab'이라는 사랑 실험실을 만들어서 40년간 3,000쌍 이상의 부부를 관찰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부부 대화 15분만 분석하면 이혼 여부를 94% 확률로 맞췄대요. 말의 내용이 아니라 표정, 목소리 톤, 몸짓에서요. 이 양반이 관계를 끝내는 네 가지 패턴에 붙인 이름이 '묵시록의 네 기사'인데,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예요.
그중에 경멸이 제일 치명적이라고 해요. 가트맨이 경멸을 두고 "사랑의 황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 앞에서 한참 멈췄어요. 경멸 하나만으로 이혼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단독으로 가장 강력한 지표였다는데, 경멸이 잦은 커플은 면역 기능까지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관계의 독이 진짜 몸까지 망가뜨리는 거죠. 비난과 불만의 차이도 곱씹게 되는 부분이에요. "왜 또 늦었어?"는 불만이고 "당신은 항상 이기적이야"는 비난이라는 거. 불만은 행동을 문제 삼고 비난은 존재를 문제 삼는다는 구분인데, 평소에 별생각 없이 했던 말들이 어느 쪽이었는지 좀 찔렸습니다.
가트맨이 발견한 또 하나의 숫자가 5:1이에요. 행복한 커플은 부정적인 상호작용 하나당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다섯 번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관계를 '감정 계좌'에 비유했어요. 웃음, 관심, 감사, 접촉이 입금이고 비난, 무시, 짜증이 출금이라는 거예요.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하루를 밝게 만들지만 냉담한 말 한마디는 며칠을 어둡게 만든다는 비대칭이 5:1의 근거였어요. 이 부분 읽으면서 지난주에 제가 배우자한테 짜증 낸 횟수랑 고맙다고 말한 횟수를 헤아려 봤는데, 비율이 영 별로였어요.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 다음 챕터인 페렐의 '욕망의 역설'은 결이 좀 달랐어요. 에스더 페렐이라는 커플 치료사인데, 이 사람은 사랑과 욕망이 같은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사랑은 가까움을 원하고, 욕망은 거리를 원한다는 거예요. 친밀해질수록 사랑은 완성되지만 바로 그 순간 욕망은 대상을 잃는다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욕망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이 말이 좀 아팠어요.
특히 이 챕터에서 와닿은 건 아이가 태어난 뒤의 이야기였어요. 두 사람이 연인에서 부모로 바뀌고, 대화 주제가 분유와 기저귀가 되고, 좋은 팀이 될수록 좋은 연인이 되기는 어려워진다는 거. "이것이 실패가 아니다. 이것이 구조다." 이 한 문장이 한참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돌봄의 언어와 욕망의 언어는 다르다는 페렐의 말이, 결혼한 지 좀 된 분들이라면 뭔 소린지 바로 이해가 가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Part 4의 보웬 챕터, '나를 잃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가'. 솔직히 이 챕터가 제일 뜨끔했어요. 머레이 보웬이라는 가족치료의 선구자가 만든 '자기분화'라는 개념을 다루는데, 도입부가 너무 일상적이라 바로 빨려 들어갔거든요. 퇴근하고 들어왔는데 배우자가 조용해요. 그 순간부터 내가 뭘 잘못했는지 신경이 쓰이고, 저녁 내내 표정 살피다가 결국 "나한테 화난 거 있어?" 하고 묻게 되는 그 풍경. 너무 익숙해서 좀 웃펐어요.
"오늘 하루가 상대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다. 내 기분은 없었다. 상대의 기분이 내 기분이었다."
이걸 보웬은 사랑이 아니라 '융합'이라고 불렀어요. 자기분화가 높다는 게 차갑거나 무심한 게 아니에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에 삼켜지지 않는 것. 상대를 충분히 느끼면서도 그게 내 전부가 되지 않는 상태. 책 안에 이런 질문이 있어요. 상대 말에 즉각 반응하고 후회한 적 있는가. 그 반응이 자동이었는지, 선택이었는지 구분하라고. 자동이냐 선택이냐. 이 질문이 며칠 동안 떠나질 않았어요.
뜨끔했던 또 한 군데는 "나는 혼자가 편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짚는 부분이에요.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분화가 높은 게 아니라, 가까워지면 융합될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일 수 있다고. "거리를 두어야만 유지되는 독립은 독립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인간관계 폭을 줄이는 게 어른의 지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좀 찝찝하더라고요.
이 챕터의 마지막 처방은 단순한데 따뜻해요. 상대 표정 읽기 전에 자기한테 먼저 물어보라고요. 나는 오늘 어떤가. 내 기분은 어떤가. 그게 먼저 있어야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게 생긴다고. 자기 챙기는 게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의 전제 조건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가족도 회사도 챙기느라 정작 나를 잊고 사는 시기에 좀 필요한 말이었어요.

책은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고, 챕터마다 레이아웃이 잘 정돈돼 있어서 읽기 편했어요. 인용문이랑 INSIGHT 박스가 따로따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한 챕터씩 끊어 읽기 좋더라고요. 요즘처럼 날 따뜻해질 때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한 챕터씩 넘기기에 딱이에요.
연애 막 시작한 분들보다는, 오래 함께한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결혼 생활이 길어진 분들, 자녀 키우다 보니 어느새 연인보다 팀이 된 부부, 가족 안에서 자기 자신이 자꾸 옅어진다고 느끼는 분들이라면 저처럼 Part 3와 Part 4부터 펼쳐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한 줄은 이거였어요. "한 번은 실수다. 반복되면 구조다." 그동안 내가 성격 문제라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구조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책이었습니다.

사랑은 완벽해져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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