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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BOOK U LOVE 카페 활동을 하면서 평소라면 손이 안 갔을 책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데요,
이번에 만난 《암세포의 진화》(아테나 액티피스 저, 열린책들)가 딱 그런 책이었어요.
제목만 보면 무겁고 어려울 것 같지만, 부제가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주변에 암 투병 중인 분이 계셔서 암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 책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펼쳐 봤습니다.

읽기 전에는 암에 대한 의학 지식을 나열하는 책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어요.
아테나 액티피스는 암을 병원이 아니라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고요.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한 순간부터 암은 필연적이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데,
공룡 시대에도 암은 있었대요. 수억 년 전부터 함께해 온 존재라니, 단순히 현대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어요. "암은 말 그대로 진화의 실체화다,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진화 그 자체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한참을 멈추고 다시 읽었어요. 이 한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속도감 있게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에요.
중간중간 교과서적인 설명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어요.
하지만 상황에 대한 비유라든가 암세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 나올 때면 확실히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어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2장의 "나쁜 룸메이트" 비유였어요. 할당된 일은 안 하고, 어지른 건 안 치우고, 지적하면 안 듣는 룸메이트. 처음에는 냉장고 음식을 마음대로 먹더니,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빨랫감을 쌓아 두고, 급기야 게으른 친구들을 무한정 초대해서 룸메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요.
저자는 이걸 B급 영화에 비길 수 있다고 했는데, 읽으면서 진짜 웃음이 나왔어요.
우리가 누군가한테 "진짜 암적인 존재야"라고 할 때 쓰는 그 표현이 딱 떠오르거든요.
늘 민폐만 끼치고, 같이 살면서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그런 존재.
비유가 너무 정확해서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비유의 진짜 핵심은 그다음이었어요. "까다로운 룸메이트처럼,
암은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암과 더 효과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심지어 암을 함께 살아가기 한결 쉬운 병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암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박멸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관점.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됐어요.
책에는 다세포 생물이 유지되려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규칙이 나와요.
통제를 벗어난 분열을 하지 말 것, 위험하면 스스로 파괴할 것, 자원을 공유할 것, 자기 일을 할 것,
환경을 관리할 것. 저자는 이걸 "다세포성 작전집"이라고 불렀는데, 암세포는 이 규칙을 하나씩
어기는 존재더라고요. 이렇게 다섯 줄로 정리되니까 암이라는 게 뭔지 훨씬 선명하게 와닿았어요.
자기 일은 안 하고, 자원은 독차지하고, 친구는 마구 불러들이는 그 나쁜 룸메이트가 결국 이 규칙을
전부 어기는 셈이었던 거예요.

읽으면서 계속 흥미로웠던 건 치료에 대한 관점이었어요. 보통 암하면 "전쟁"을 떠올리잖아요.
투병, 싸움, 승리, 패배 같은 단어들이요. 그런데 저자는 그 전쟁 비유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요.
공격적인 고용량 치료가 오히려 저항력 있는 암세포만 살려서 더 강한 암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불사조가 잿더미에서 되살아나듯, 치료에서 살아남은 세포가 더 강해져서 돌아온다는 비유가 머릿속에 계속 남더라고요. 게다가 "공격적 마음가짐으로 암에 접근하는 것은 암 예방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전쟁 비유가 환자와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부분이라 많이 와닿았어요.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 신화의 두 전쟁의 신을 빌려와요. 무차별 공격을 하는 아레스의 방식보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서 최소한의 힘으로 이기는 아테나의 방식이 암 치료에 더 적합하다고요. "(내 이름이 아테나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괄호가 붙어 있어서 웃겼는데, 설득력은 확실했어요.
그래서인지 제6장에서 소개하는 대안적 치료 전략들이 더 흥미롭게 읽혔어요. 암세포에게 가짜 약을 줘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에르자츠드로그" 전략이 있고, 놀랍게도 베이킹 소다로 종양 주변의 산성 환경을 중성화시켜서 전이를 줄인 실험도 있더라고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베이킹 소다가 암 연구에 등장한다니 읽으면서 눈이 커졌어요. 또 암세포끼리 서로 소통하고 협력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는데, 그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정족수 억제제라는 개념도 나와요.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게 아니라, 모이지 못하게 하고, 소통하지 못하게 하고, 헛힘을 쓰게 만드는 전략들. 읽으면서 "이런 발상이 가능하구나" 싶었어요.
우리 몸에는 TP53이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일종의 화재 감지기 역할을 한대요. 암세포가 될 위험이 있는 세포를 찾아내서 경보를 울리는 건데, 문제는 가끔 가짜 경보도 울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짜 경보를 감수하더라도 민감하게 유지하는 게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라는 논리가 화재 감지기 비유로 설명되니까 바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한편으로 암을 막으려는 과잉 반응이 조기 노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암 억제와 노화가 맞교환 관계라니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했어요.

책이 꽤 두꺼운 만큼,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관심 가는 챕터부터 골라서 나눠 읽는 게 훨씬 낫더라고요. 저도 전체를 한 번에 읽었다기보다는 궁금한 부분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읽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읽으니까 각 챕터의 내용이 더 또렷하게 남았어요. 지루한 부분을 건너뛰고 비유가 풍부한 부분부터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에요. 암을 감기처럼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습니다.
암이라는 주제가 무겁긴 하지만, 이 책은 의외로 담담하게 읽혀요.
공포를 주기보다는 이해를 도와주는 느낌이랄까요. "암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암은 생명의 기원을 엿보는 창이자 대규모 협력이 치한 문제다.
다세포성의 본성이자 진화 과정 그 자체다."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고 책을 덮었는데,
암이라는 존재가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나 지인 중 암 투병 중인 분이 있어 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
"암은 왜 생기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궁금했던 분
의학서보다는 읽기 편한 과학 교양서를 찾는 분
두꺼운 책을 천천히 나눠 읽는 걸 즐기는 분
진화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로 세상을 보고 싶은 분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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