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유명한 책인데 언젠간 봐야지 하면서 좀 늦게 읽게 된 베스트셀러. 사전 정보 없이 단편적인 이야기의 묶음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첫 챕터를 한번 더 읽어 보았다. 마음이 따뜻해 지는 해피엔딩이라 감정소모가 많고 힘들때 읽으니 책을 잘 골랐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동구에게 주는 위로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뒤에는 꼭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물론 진짜 과연 동구에게 위로가 되었을 지는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설이는 설이대로 동구는 동구대로,어린이라는 존재로 이해받고 존중받길.
여름엔 북유럽의, 꼭 북유럽이 아니더라도 추운 나라를 배경으로 한 추리미스터리스릴러를 읽는 것이 나름의 여름 나기 방법인데마침 기다리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신작도 나와서 읽어보았다. 언제쯤 해리는 행복해 질 수 있으련지, 이번 권이 그의 고통의 정점 인것 같아 과연 다음 시리즈의 시작에서 해리를 어떻게 볼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책에 대한 후기를 최대한 피해서, 그리고 특정 어느 때문에 읽어야 한다는 평만 기억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읽으면서 머리속으로는 지우면서 읽었다. 짧은 소설인만큼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집중에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주인공들의 우정 뿐 아니라, 그 곳의 풍경도 아름답게 묘사되어서 나에겐 그 결말만 의미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다들 그랬듯이 읽고 한 번도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 본 첫문장..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글쎄요, 사실 전 여기에 어떤 재난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그게 재난인 건 아니잖아요."
‘교살자무화과나무
내가 당신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빛나고 있을 거예요. 나도, 당신도, 그걸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믿지는 말라고. 3퍼센트쯤은 가짜일 수 있다고.
불안은 신발 같은 거니까요. 어딜 가든 걸으려면 신발이 필요하죠."
사막은 사막이 아니라 완만하고 느린, 거대한 동물로서 누워 있었고, 모래바람도 따갑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나가 알고 싶은 것은 동행자, 럭이었다. 무이 역시 럭을 통해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다. 요나와 럭은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가르쳐 주면서 무이를 산책하곤 했다. 자주 그랬다.
두 사람은 늘 함께해야만 벽 하나를 완벽하게 칠할 수 있었다. 죽을 때도 둘은 함께였다. 페인트칠하던 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벽이 무너지는 그 순간, 남자는 여자를 보고 여자는 남자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감기지 못한 채 심장이 먼저 멎었다. 그들은 그렇게 집과 함께 무너졌다.
그러나 진짜 재난은 두 세계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무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않겠는가. 그래서 흔한 음모론의 줄거리처럼, 그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렇지만 누가 소수가 되려고 하겠는가.
어찌 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학살의 한 형태였으나, 학살의 책임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