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사실 전 여기에 어떤 재난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그게 재난인 건 아니잖아요."
내가 당신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빛나고 있을 거예요. 나도, 당신도, 그걸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믿지는 말라고. 3퍼센트쯤은 가짜일 수 있다고.
불안은 신발 같은 거니까요. 어딜 가든 걸으려면 신발이 필요하죠."
사막은 사막이 아니라 완만하고 느린, 거대한 동물로서 누워 있었고, 모래바람도 따갑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나가 알고 싶은 것은 동행자, 럭이었다. 무이 역시 럭을 통해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다. 요나와 럭은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가르쳐 주면서 무이를 산책하곤 했다. 자주 그랬다.
두 사람은 늘 함께해야만 벽 하나를 완벽하게 칠할 수 있었다. 죽을 때도 둘은 함께였다. 페인트칠하던 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벽이 무너지는 그 순간, 남자는 여자를 보고 여자는 남자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감기지 못한 채 심장이 먼저 멎었다. 그들은 그렇게 집과 함께 무너졌다.
그러나 진짜 재난은 두 세계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무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않겠는가. 그래서 흔한 음모론의 줄거리처럼, 그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렇지만 누가 소수가 되려고 하겠는가.
어찌 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학살의 한 형태였으나, 학살의 책임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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