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츠바랑! 6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츠바랑> 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사' 에피소드를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나온다.  비에 폭삭젖은 채로 두 팔을 벌리고 마당에 서 있는 요츠바에게 옆집의 후카가 어서 안으로 들어올 것을 재촉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요츠바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괜찮아 괜찮아. 저 녀석은 뭐든 즐기거든. 무적이야." 라고 말이다. <요츠바랑> 6권은 무엇이든 항상 즐기는 요츠바의 무적의 기록. 그 여섯번 째 모음집이다.                         

여기서 요츠바는 다섯살이 되었다. (물론 본인은 여섯살이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섯살 요츠바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놀라울 정도의 섬세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첫 번째 '재활용' 에피소드에서는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해 상징 놀이(symbol play)를 헤치우더니 자전거와 우유 배달에 관련된 에페소드에서는 스스로의 놀이 공간을 후카의 학교로 까지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거나 그들의 행동을 조절할 수 없는 탓에 배달을 다녀오던 여정 끝에 아버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고약한 녀석'과의 관계 역시 아직은 순탄치가 않은 듯 하다. 언제나 사물에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버릇은 여전하고 어찌보면 자폐적인 것 같고 어른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금요일'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의 간식을 건드린 뒤 미안해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온 집안을 단어 표지로 능숙하게 뒤 덮는 언어 사용 능력을 선보여 좀 성숙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요츠바가 무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아이가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우주의 중심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인식을 유지하게 되는 시기가 존재한다. 세상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이 온 세상을 구성하게 되는 전지전능한 유희의 시절 말이다.

<요츠바랑>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요츠바는 <아기와 나>의 진이와 신이처럼 응석받이이거나 어른스러움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며 동시에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처럼 처음에는 동심에 호소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세속화의 과정을 겪게되는 캐릭터도 아니다. 무슨 요술이나 마법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고길동 같은 가혹한 부양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자라나는 아이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즐거운 것은 요츠바 자신이 아닌 요츠바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아버지와 점보, 옆집의 자매들, 기타 친구의 친구들)의 관찰을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요츠바의 주변인들은 언제나 요츠바식 놀이에 진심으로 동참한다. 요츠바의 룰을 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경쟁심에 불타서 무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충분히' 그리고 '마음껏' 이를 즐긴다. 그리고 잠시 회상에 빠지기도 한다. 본인이 무적의 존재로 군림하던 시절을 말이다.

우리는 대게 무적의 시기를 지나 순종과 적응의 시기에 살게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신에게는 요츠바와 같았던 시기가 당연히 존재했다. 물론 주변에서 얼마나 당신의 규칙에 호응을 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항상 최강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 투영된 요츠바라는 캐릭터의 생명력은 바로 그 욕구 속에 요란스럽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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