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로 철학하기
권혁웅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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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를 보지 않았는데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원피스를 만든 사람이 여기 나오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알고, 거기에 맞는 세계관을 하나씩 채워넣었을까 마치 레고처럼?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그럴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원피스를 보지 않은 자의 정체성으로 이 책을 읽는 중이다. 이 책을 읽게될 독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원피스를 보지 않았을 것이므로.

⚘️ 사실 루피가 영웅 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영웅이 민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영웅은 다수와 구별되는 소수, 다양체가 아닌 중심, 리좀이 아닌 뿌리다. 영웅은 왁자지껄한 식사자리에 참여해서 다양체의 일원이 되는 n-1이 아니라, 그 식사자리를 주관하는 시혜적인 인물, 이를테면 왕이나 아버지에 불과하다. p.47

이런 대장이라니.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것 아닌가. 루피로부터 환대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우리가 실상 타인을 배척하지 않고 나의 영역으로 초대할 때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설사 내 집을 망치더라도 이해가능한 수준 정도일 것이라 기대한다는 것을 숨긴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거기까지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사람이니까. 절대적 환대는 가능한가. 지금은 그런 사회인가. 그런 사회는 언제고 존재했었나.

이 책은 원피스 속 각각의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나와 세상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세계 간의 갈등이 현상하는 방식에 철학적 시선을 던져보는 시도를 한다. 철학자의 말에 익숙하거나 원피스에 능통한 자라면 더욱 몰입할 수 있겠다. 나는 둘다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권혁웅 평론가의 이야기를 지팡이 삼아 더듬더듬 원피스를 상상해본다. 글이 왜 아름답나 했더니 시인이시라고. 아직까지 '연제중' 이라는 대작 만화라서 시작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언제가 이 책을 읽는 종종 '아직도 시작을 안했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이 책은 단번에 읽어내려가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면 더 좋다는 점에서도 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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