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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평점 :
앤서니 도어 작가의 7년 만의
장편소설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실존 했던 고대
그리스 작가 안토니우스 디오게네스가 쓴 가상의 소설이자 하늘에 떠 있는 유토피아 도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양치기 아이톤의 이야기를 쓴 책 속의
책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중심으로 700여 년의 시간을 오가며 다섯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진다.
- “그리고 노아와 책을 실은 우리의 방주 이야기에서 홍수는 뭔지 아니?” 안나는
고개를 흔든다.
“시간이야. 하루하루, 일 년 또 일 년, 시간은
이 세계에서 오래된 책을 지워 버린단다. 네가 저번에 우리에게 가져다준 필사본 있지? 로마 제국 시대에 살았던 학자 아에리아누스가 쓴 거였단다. 이 방에
있는 우리에게, 바로 이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그 책 속의
문장들은 십이 세기를 견뎌야 했어.” (p. 239)
- 옛날 책 속에는 흑마술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앞으로도 언니에게 읽어 줄 글줄이 남아 있는 한, 아이톤이
무모한 여행을 고집스레 계속하며 구름 속에 자리 잡은 자신의 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한, 도시의 성문도
버텨줄 것이다. 문밖에서 기다리는 죽음도 하루 더 미뤄질 것이다.
(p. 497)
‘몽상의 세계’를 뜻하며 소설 속에서는 동명의 그리스 소설 속 아이톤이 찾아 떠나는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클라우드 쿠쿠 랜드’,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고아 소녀, 같은 시대 불가리아의 산속 마을에 사는 언청이 소년, 21세기 미국의 성 소수자 노인, 자폐 스펙트럼의 소년, 지구가 폐허로 변한 22세기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아 여행 중인
우주선 아르고스호 안의 소녀까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인물들이다.
-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할 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소리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해 봐야 그들이 쓴 단어를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에 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실패가 자명한 작업이다. 하지만
무작정 도전하는 것. 역사의 어둠으로부터 강 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 우리의 시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헛고생이라고 그는 말했다. (p. 618)
- 어른들은 이 우주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당해 줄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시빌이
모두 해결해 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른들이 스스로 위로하려고 만들어 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시빌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p. 643)
다섯 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나와 처음에는 복잡하게도 느껴지지만
24개 챕터를 시작하는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아이톤의 이야기와 서로 겹치지 않는
다른 시공간을 사는 주인공들이 <클라우드 쿠쿠 랜드>라는
책을 만나고 더 나은 현실을 향해 분투하는 모습,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지켜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는 흐름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했다. 책에 대한 기본
정보 없이 민음북클럽 첫 독자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어마어마한 페이지 수에 멈칫하게도 만들었지만, 한 권의 책이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다른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매체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책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도
있지만 물성을 가진 책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다양한 시대의 문화와 주제들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 낱장들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암시하는
내용만 있으면, 나머지는 아이들이 상상으로 채워 나갈 것이다. 몇
십 년 만에 처음, 짐작하기로는 부엌 헛간의 난로에서 렉스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던 제5수용소 시절 이후 처음, 그는 마음의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다
뜯어낸 것처럼 온전히 깨어 있음을 느낀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이 여기,
바로 그의 눈앞에 있다. (p. 680)
- 한생을 살면서 벅차도록 쌓이는 기억을
뇌는 꾸준히 까부르고 중요도를 따지고 가슴 아픈 기억은 묻기 마련이지만, 어쩐 일인지 이 나이가 되도록
뒤로한 기억이 담긴 엄청나게 큰 자루를 질질 끌고 다니고 있으니, 대륙에 맞먹는 그 무게를 견디다 보면
마침내 세상 밖에 내놓을 때가 오는 것이다. (p. 716~717)
* 민음사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