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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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은 처음 접해본다. 저자인 김경주 작가는 시인이자 극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장르를 결합했다. 낯선 장르지만 조금은 익숙한 건, 희곡이라는 형식 안에서 시적인 대사들로 마치 연작시가 이어지듯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인 것 같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소외된 존재들이다. 다리가 없기에 고무로 하체를 감싸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김 씨. 그런 김 씨를 눈오는 거리에서 구출한 파출소 직원 노인. 파출소 근처 무덤의 유령 사내. 그리고 김 씨의 외국인 아내.

 

 

시극은 내내 대회로 이어진다. 알 수 없는 대화의 나열. 알 듯, 모를 듯한 대사들. 다리가 없는 김 씨의 고무하체는 지느러미가 되고 김 씨는 그의 인식에서 물고기가 된다. 그는 파출소 직원과의 대화속에서 자신을 '아가미만 살아 있는 물고기'라고 지칭한다.

 

 

우연히 만난 김 씨에게 하나 뿐이었던 존재인 아내는 어느 날 갑작스레 김 씨를 떠나버렸다고 말한다. 아내는 김 씨에게 단 하나의 위로였고 곁의 사람이었다. 비록 거리에 김 씨를 내려놓으며 구걸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절망. 기다림. 고통. 애증. 뒤범벅된 감정속에서 김 씨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런 그를 위로하는 파출소 직원 노인이 있다. 둘의 대화가 이어질 수록 서로가 가진 상처가 드러나고, 그 상처들속에서 역설적으로 김 씨와 파출소 노인은 위로와 평안을 느낀다.

 

 

바닥 인간. 다리가 없어 땅과 배를 맞댄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 씨. 김 씨를 보는 거리의 사람들의 불쾌함 혹은 동정..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보는 김 씨의 시각.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김 씨를 보는 파출소 노인의 시점. 노인의 위로에 바닥인간인 자신에 대해 말하는 김 씨. 돌고 도는 시각의 꼬리물림 속에서 존재 할 리 없는 유령사내와 곁에 있을리 없는 김 씨의 아내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어서 한 두번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한번 그리고 두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들을 다시한번 곱씹어 봐야 겠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지만 시극이라서 연극으로 만들어지면 좀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단점이자 장점인 것이 있다. 희곡의 극적인 느낌, 절정의 드라마틱한 장면보다는 대화에서의 '말'로 연결되는 절정을 추구하고 있어서, 시각적인 재미라던지 등장인물의 감정의 극에 이른(ex증오,사랑,복수) 카타르시스는 거의 없다는 것.

 

 

그냥 생각을 하게 한다. 다리가 없는 고무인간 김 씨와 아들과 아내를 잃은 파출소 직원과 유령 사내의 대사들을. 소외되고 고독한 바닥인간들과 인생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그래서 책을 덮었을 땐 멍한 여운이 남는다.

 

 

책의 제목 '내가 가장 아름다울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의 대사라는데 시간이 날 때, 이 영화를 찾아보고 싶다. (마지막페이지에는 이 극에 대한 해설이 붙어있는데 영화와 관련해서 극을 해석해준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이러한 대사가 나왔기에 그 대사에 감화된 저자가 이런 극을 쓰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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