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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죽고, 시에 살다 -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
우대식 지음 / 새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 라는 부제의 이 책은 짧은 생애동안 시에 열정과 집념을 쏟은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유명한 시인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런 시인도 있었나?" 싶은 아주 생소한 시인이었다.
짧은 문장 한 줄로도 뜨거운 감동과 인상을 남기는 시인들의 생애는 어땠을까.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그들의 삶이 대체로 불우하고, 고독하고, 곤궁했다는 점이다.
그토록 힘겨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빛나는 작품이 탄생한 건지, 그 반대인 건지는 모르겠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맨처음 이 책에서 유일한 여류시인인 이연주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연주 시인의 시는 과격하고 어둡고 비틀려있다.
붕괴된 가족의 모습, 몰락한 도시의 풍경, 상실된 인간성이 표현된 시들은
그녀가 인식한 세계의 모습이다.
저자 우대식씨의 코멘트처럼 이는 '엄청난 속도로 파괴되는 인간의 어떤 영역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모습들은 불안하고 부패해 있어 내겐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연주 시인은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독일에도 다녀왔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세계관과 직업과의 상관관계는 의문이라고 한다.
이연주 시인은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을 매 삶을 마감했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시인은 기형도 시인이다.
기형도 시인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릴만큼 인지도 있는 분이라 더 집중해서 읽었다.
그의 시를
"감각의 더듬이로 스스로 구원의 문을 찾아 헤쳐가야만 하는 밀교와도 같은 것"라고
이책의 저자 우대식씨가 코멘트 했는데, 멋지다.
우울, 고독, 소외, 불안,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
나를 잃지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형도 시인은 '시'에서 찾았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위안.
자신을 지켜가는 힘. 그래서 남들에게 배우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이 책에도 있다.
이렇게 각 시인을 다룬 장의 페이지 맨끝에 이렇게 그 시인의 대표작이 실려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라는 첫 구절. 몇번을 봐도 슬프고 또 아름답다.

지랄 좀 하게 해달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고 재밌어서 사진캡쳐.
이경록 시인의 '이 식물원을 위하여' 연작시에 있는 구절인데
식물의 야수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식물원으로 상징되는 존재의 감옥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억압된 현실의 탈출 욕망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라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재밌다.

김만옥 시인.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은
종생을 주제로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적인 주제는 밝은색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생명에의 선명한 이미지는
그에게 종생의 의미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스스로 투신" 한다는 겁없는 그렇게 강렬한 의지가 연상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박석수 시인의 심청을 위하여 시의 일부이다.
이 시는 미군기지 인근인 "쑥고개"에 살았던 박석수 시인의 현실에 근거한
그가 겪은 아주 밀접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시이다.
위의 한 문장에서 표현하듯이 겨울로 상징되는 혹독한 것들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 시의 전문이 나오는데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시인은 시로 남는다고 한다.
이 책에 서술된 시인들은 "요절한 천재들" 인데 그들의 삶과 작품을 돌아보면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난 시를 찾아 읽거나 시집을 소장하거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때때로 이렇게 시와 그 시를 쓴 시인들의 삶을 만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