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 조선의 영웅들, 천하에 당할 자 없으니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6
장경남 지음, 한동훈 그림 / 나라말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고, 영화이고
전쟁을 소재로 다룬 것은 기피하는 것이
내 성향이다.
10번은 읽어야 한다는 삼국지를 읽고 나서도
"탐욕스러운 넘들... 땅도 넓구만 사이좋게 같이 살지, 왜들 싸우고 난리야"
하고 씩씩거리면서 다시는 읽지 않았었다.
암튼 이 방면으로는 나는 형편없는 독서자이다.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아무리 멋진 이야기라도
우선 화부터 나니 말이다. 

그런데, 아는 어른께서 난데없이 선물로 이 책을 보내셨다.
책을 읽고, 평을 말해야 한다는 숙제 의식 때문에
꾸역꾸역 들추기 시작했다. 

임진록을 읽어본 것은, 아주 어릴 때 어린이용 임진록이 처음이었다. 
사명당이 일본에서 벌인 신기한 활약상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7년 전쯤엔가도 필요에 의해 한 번 읽었었는데,
화만 잔뜩 났었던 것 같다. 오합지졸 구성에 오합지졸 조선~^^

나라말 출판사에서 고전읽기 시리즈를 계속 출판하고 있는데
운영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이것이 16번째 책이다.
운영전을 풀어 쓴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도 참 잘 풀어썼다고 생각했는데
16번째 시도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좋은 인상을 준다^^
 청소년들이 거부감없이 읽어낼 수 있는 문체로 잘 풀어쓴데다
전공자의 깊이 있는 분석과 균형감 있는 시각까지 돋보인다.

내가 그동안 왜 전쟁 이야기를 기피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전쟁을 생각하면 구토부터 난다.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로
인류 역사에 전쟁이 없었던 날이 40여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은 것 같다....
인간이란 게 왜 전쟁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T.T

어쨌든 전쟁은 그 사회에 있어서, 커다란 위기이다.
사람이건 사회이건 위기 앞에서는 정체가 드러나는 법인가 보다.
평화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면들이, 선명하게 잘 드러난다.

건국 이후로 200년이나 평화를 구가하던 조선은
임진년의 왜의 침입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위기 앞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자신의 자신됨을 드러낸다.

선조의 나약함,
유성룡의 어른스러움과 현실적 사고,
이순신의 예지과 꿋꿋함,
그리고 수많은 배반자들의 기회주의.

수많은 기회주의자들 중에서 국경인이라는 사람이 압권이다.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가 대신들을 거느리고 강화도를 거쳐 북도에 들어가 회령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고을 아전 국경인이라는 놈이 흉계를 세우고 동료 십여 명고 모여 몰래 의논하였다.
"지금 조선은 거의 다 왜적의 손아귀에 들어 예전처럼 회복되기는 어려운 형편이 되었소. 어찌 서산에 지는 해만 바라고 있겠는가? 이제 동녘에 떠오르는 새 달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소? 우리가 두 왕자와 대신들과 한극함을 사로잡아 가등청정에게 바치고 항복하면 반드시 큰 상을 받을 것이오" ............ 국경인이 길을 인도하는 체하며 일부러 왕자를 연못에 빠지게 하자, 숨어 있던 동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끈으로 묶었다. 사로잡은 왕자 일행을 말에 태우고 왜적에게 데려가 바치자, 예상대로 가등청정은 크게 기뻐하며 국경인에게 북도의 수령 벼슬을 주고......(53쪽)


내가 이 위기 앞에 있었다면, 나의 어떤 면이
역사 앞에서 남을 것인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져 놓고는 살 떨린다.^^

나처럼 무대공포증이 심한 사람이 임진록에 나오는 수많은 영웅들처럼 눈에 띄는 행동을 했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원칙을 지켰다는 보람이 있게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논개처럼 말이다.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였던 논개는 최경회가 전사하자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을 기생이라고 속이고 연회에 참석하여 왜장과 함께 죽었다고 한다. 죽음 당시 스무살이었던 그녀가 가졌던 마음가짐을 생각해보면, 페미니스트들이 뭐라고 하건간에 우선은 숙연해진다. 

암튼, 전쟁이야기를 읽을 때,
화를 내고, 구토만 느낄 일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각종 인간됨 앞에
나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이번  독서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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