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하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렸다.
눈 때문인지 가볍게 러시아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들긴 했는데,
새벽까지 이 책을 읽고,
소설 안의 여러 상황을 그려보고 생각이 많아서 늦게까지 뒤척였다.


2. 먼저, 로쟈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이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로쟈는 가난했고,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작 훔친 돈은 쓰지도 않고,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았다.
영민한 대학생 로쟈는 사람의 종류에 관한 특이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사의 진행을 위해, 범죄적 행동마저도 용서되는 비범한 인물이 있고,
(나폴레옹처럼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도 역사의 영웅으로 남는 류의 사례 말이다)
도덕의 선을 넘을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범한 인물군에 속하는지 증명해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심리인가.

사람이란게 자기 증명 욕구가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때가 가끔 있기는 하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일이 사람을 한없이 안정감 있게도 들뜨게도 하는 일들을 볼 때,
자기는 그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받는 사랑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  
자기 증명 욕구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사랑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수단이 될 것이므로. )
인간이란 자기 증명을 통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 같은 것을 구비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그 짐을 덜어버리기만 해도
얼마나 더 가볍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3. 로쟈는 살인 후에, 예상치 못한 고뇌에 시달린다. 
자신은 비범한 사람이므로
범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지만,
끊임없이 신경증에 시달린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신을 놓았다고 증언할 정도로.....
심지어 읽는 나까지도 일종의 스트레스적 징후를 느끼면서
그의 심리 묘사를 읽어야 했다.
로쟈 자신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이 범죄가 범죄일 수 없음을 말하지만,
내면의 또 다른 자아는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떨고 자기혐오에 시달린다.   
로자의 비참함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지점이리라.

사람이 자기가 자기 행동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샤르트르가 말한 '기투'같은 개념들은
인간의 무한한 자유를 말해 주는 듯 해서,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한껏 올라가고 기분이 퍽 고양되지만
인간이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는 아닌 것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만 봐도, 내 욕망과 내가 받은 상처, 교육, 환경
이런 것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을....
그런 사람이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의 처참함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에필로그 부분에서 로쟈가 꾸는 꿈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병을 앓는 동안, 그는 이런 꿈을 꾸었다. 온 세상이 아시아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유럽을 향해 번져 가는 어느 무서운, 그리고 일찍이 들어 보지도 못한 질병의 희생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아주 적은 수의 몇몇 선택된 이만을 빼고는 누구나 멸망해야 했다. 일종의 새로운 미생물 섬모충이 나타나 그것이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생물은 지력과 의지를 부여받은 정령이었다. 여기에 홀린 사람들은 삽시간에 정신이 착란되어 발광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감염된 사람일수록, 인간이 지금처럼 자기를 총명하여 불변의 진리를 파악했다고 생각한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일찍이 이토록이나 자기의 판단, 자기의 학문에 있어서의 결론, 자기의 도덕적인 신념 이나 신앙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마을 전체가, 거리 전체가, 국민 전체가 거기에 감염되어 발광해 가고 있었다. 모두가 불안에 쫓기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누구나 자기 혼자만이 진리를 지킨다고 생각하였고 남을 보고는 괴로워하고, 자기 가슴을 치거나 울거나 손을 마주 비비거나 하고 있었다. 누구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랐으며, 무엇을 악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선으로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누구를 죄있는 자로 규정짓고 누구를 죄없는 사람으로 할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전혀 뜻도 없는 증오에 쫓기어 서로를 죽였다. 서로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이 되어 모였으나, 이 군대는 행군 도중에 별안간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여 대열은 엉망이 되고 병사들은 서로 덤벼들어 찌르고 베고 물어뜯으며 실랑이를 벌였다. 온 거리에서는 하루 종일 경종이 울리어 모두 불려졌으나 누가 무엇 때문에 불렸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며, 그저 모두들 불안에 쫓기고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생각이 며 선후책을 들춰냈으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매우 평범한 일상적인 일도 포기되었다. 농사도 짓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몰려서서 무엇인가를 협의하며 다시는 분열하지 말자고 맹세하는 것이었으나, 곧 방금 자기들이 결정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여 서로 를 비난하고 아귀다툼이나 칼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화재가 일어나고 기근이 시작되었다. 사람이나 물건이 모두 멸망해 갔다. 질병은 점점 더해가고 퍼져 나갔다. 온 세상에서 이 재난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여 대지를 일신하고 정화시킬 사명을 띤 몇몇의 선택된 결백한 이들뿐이었으나, 누구 하나 어디서도 이 사람들을 본 자는 없었으며, 그들의 말이나 목소리를 들은 자도 없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 무시무시한 환각의 기억이 언제까지나 슬프고 가슴아픈 여운을 남기며, 이 열병에서 온 악몽의 인상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아 괴로웠다.



 

4. 「죄와 벌」은 소설의 중요한 사건 전개가 상당부분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로쟈의 살인도 사전에 철저한 계획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 같지만,
살인의 부당성을 이성적으로 깨닫고 있던 로쟈가
 몇몇 사건이나 상황에 의해 아주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또, 살인 후에 로쟈는 가끔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듯한 감정 변화를 보이는데,
이것도 충동적이고 우연적으로 느껴질 만큼 급작스럽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소냐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은
그 급작스러움 때문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읽을 때는 너무 심오한 주제를 작가가 처리하기 힘들어서
이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사람을 면밀하게 살핀 작가의 역량인 듯 싶다.
이 주제에 대해서도 밤새 한참을 생각해 본다.
인간이란 것이 그렇게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란 말인가.
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내 스스로에게 솔직한 일이다.
사소하고 충동적인 일들이 사람들을 얼마나 움직여가는지 자주 절감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로쟈가 출소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
이 소설에서는 열린 결말 처리를 하고 있고 소냐로 인한 변화를 암시하고 있어서
긍정적인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로쟈는 출소 후에 그 냉소주의를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행복한 결말을 예상하기나 했을까?
난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몇 번이나 도박을 끊으려고 다짐했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을 평생 겪지 않았던가.
사람이 영민하다는 것이 뭘까.
자신의 도박 중독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란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내 앞에서 울면서 다시는 도박판에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할 때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진심인 것이 맞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기의 천재 도스토예프스키의 영민함이
그 진심을 몇 달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평생 겪고도,
정녕 도스토예프스키는 로쟈의 변화를 믿었을까.

아~~~ 사람이 진정으로 변한다는 것은 뭘까. 변할 수는 있는 것일까....




5. 사족 - 로쟈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주 풍부하게 그려지는 것이 이 소설의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을 읽느라 겨울밤을 새고 오늘은 몹시 피곤하지만, 이런 류의 긁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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