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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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  빠르게 읽는 내 악습을 고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집어들었던 책이다.

아~ 모순이다^^
책을 천천히 읽자고 설파하는 이 책을,  
한자리에서 두서너 시간 들여 뚝딱 읽어버리고 덮었다.
내 악습이 고질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책 내용이 그리 많은 시간을 요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다 알고 있는 이야기뿐이었다는 사람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이 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실천편'에서는 저도 모르게 지나치고 읽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212쪽)


저자가 예상했던 딱 그만큼의 인상이었다.^^
천천히 읽자는 이야기는 '소유냐, 존재냐'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일테다.
그러나 '실천편'에서는 '아~ 작가가 이런 장치를 삽입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억지스러운 느낌(또는 비약한다는 느낌을 주는 표현)이 드는 표현을 종종 만난다. 그 억지스러움은 작가의 불친절이나 미숙함으로 대개 오해받기가 일쑤인데, 사실은 어떤 풍부함을 뒤집어쓴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히라노가 예를 든 텍스트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 작가의 '마음'이라는 소설이다. 나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히라노가 인용하는 몇 페이지만으로도 히라노가 설명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인용문을 읽다가 소설 안에서 '형'이 주인공이 "선생님"으로 부르며 따르는 사람을 놓고 "에고이스트는 안 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생각은 뻔뻔한 생각이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도 이 대사는 참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대목을 히라노는 이렇게 지적한다.


형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을 곧 '에고이스트'라고 말할 수 있으냐 하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사람의 존재 의의를 '유익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공리주의적 인간관이다. 형은 이 시대에 보급되고 있던 그러한 사고방식을 대표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그후 일본의 궤적을 알고 있는 우리 현대의 독자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의 맹아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108~109쪽)


음. 그렇구나. 억지스러워보이는 데에 비밀이 숨겨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이번 독서의 소득이라고 하겠다.^^

또 하나의 소득이 있다면, 카프카의 '다리'라는 단편을 만난 것이다. 카프카에게 이런 절묘한 콩트작이 있는줄 몰랐었다. 작품 자체도, 이것을 읽은 다른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도 참 마음에 들었다. 나만의 해석을 만들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소설은 매직 미러 같은 존재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면 그 안에 있는 작자가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 비춰지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150쪽)


이 책은 고등학생들에게 선물해야 딱 좋을 책이다. 독서 홍수에 내몰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독서의 즐거움과 천천히 읽는데서 나오는 독서의 힘이니까. 덤으로 언어영역 점수도 올라가고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히라노는 철학서를 읽는 방법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영락없이 언어영역 수업 같다.^^


책 205쪽

진짜 고등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충고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 간단한 것을 몰라서 고통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국어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았다....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과 문제를 하나의 연속된 문장으로 보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시험은 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문장을 독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문장을 인용하여 그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발상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내 국어 성적은 순식간에 상승했다.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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