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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질병의 통역사라는 제목에 빠져, 책을 펴들고 나서
단편 세 편을 읽고, 멈추었다. 빨리 읽어버리기 싫어서이다.
그리고 가을 내내 천천히 읽었다.
소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일은 오랜만이다.
내가 만약에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보석 같은 책을 만나다니,여러 종류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올 가을은 아름다웠다고 해야겠다.
「잠시 동안의 일」 - 어떤 부부. 같은 집에 살지만 남과 다를 바 없이 사는 어떤 부부. 며칠 동안 저녁 1시간씩 정전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난데없는(?) 대화를 하게 된다. 그들의 어그러짐은 아이의 사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한 때 푹 빠져 있었던 드라마 '연애시대'와 같은 설정이다. 그 드라마를 보고도 한참을 울었는데, 드라마의 원작 소설자가 아마도 이 단편에서 모티프를 얻은 건 아닐까. 별거를 결심했던 그녀는 마음을 돌리게 될까?
「섹시 (Sexy)」- 저 단어...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저것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낀다면? 또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뻔한 설정에 뻔한 깨달음에 뻔한 결말이었는데도 마음이 아릿해졌다. 어떤 직장녀가 유부남의 정부가 된다.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운 생활이 그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독과 권태는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그것을 잊게 만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 환영하게 만들지 않던가. 그 유부남은 그녀에게 섹시하다고 했는데, 그 말은 그녀에게 세상 어떤 말보다도 감미롭게 들린다. 그녀가 다시 섹시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친구의 조카에게서이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은 너무나 생경해서, 그녀는 그 말의 의미를 물어야 했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불현듯 그녀는 정부 노릇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깨닫는다. 그녀에게 마음이 갔다. 토닥토닥....고독하고 권태로운 도시 생활이 그녀를 경박한 애정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아이의 말을 통해 뭔가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그녀에게 있었으니까.... 그녀는 이제 한층 더 인생에 한 걸음 다가섰고 더 깊어졌다. 으아~ 곱지 않은 소재지만, 참 곱게 써진 소설이다.
「질병의 통역사」- 다스 부인은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28살의 나이에는 벌써 세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은 그녀의 불행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할 남자일 것이다. 젊은 여자가 엉겁결에 결혼하여, 집안일과 아이들에 매여, 피곤하면서도 권태로운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스 씨는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잠깐 묵으러 왔던 남편의 친구가 그녀를 덮쳤을(?) 때, 그녀는 이미 '될 대로 되어라'라는 마음이 들 만큼 삶에 지쳤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두번째 아이는 바로 그 남자의 아이였고, 다스 부인은 그 비밀을 8년째 혼자 간직해왔다. 그런데, 인도 여행을 하는 중 관광안내인인 카파시 씨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는다. 의사와 언어가 다른 환자를 위해 통역을 한다는 '질병통역사'라는 카파시 씨의 특이한 직업에 끌려서 말이다. '질병통역사'란 자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자신에게 통역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증상을 이야기한다. 가끔 자신의 생활 전체에 대해, 아이에 대해 살의를 느낀다고... 카파시 씨는 당황스럽다. 하지만 정곡을 찔러 보기로 한다. "다스 부인,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고통입니까? 죄책감입니까?"
다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뛰어간다. 아이를 안고 머리를 빗겨준다. 다스 부인이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매어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 죄책감이든 고통이든 그것이 현재를 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아들'인 그 아이를 돌보는 것이라는 것? 그 아이는 내 아이라는 것?
8년 동안 혼자 아프고 무서운 비밀을 간직해 온 다스 부인의 고통에 공감이 되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젊은 여자가 '가정'이라는 신성하고 무거운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대는 것을 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다스 부인의 답답함, 우울, 죄책감, 분노, 허탈함....이런 것들이, 여자를 단지 모성애의 화신으로 여기는 흑백사진같은 관념으로부터 벗겨내 주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또, 어머니이게 만드는 여성의 그 무엇과 아이들의 그 무엇에 대해 경외심이 들게도 해 준다.
「진짜 수위 (두르완)」- 플로베르가 쓴 글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마음 밑바닥을 잘 드러내 준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능력은 자족의 능력이다.
「피르자다 씨가 저녁 식사에 왔을 때」- 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뉴스로밖에 들을 수 없고,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화날 만큼 자세히 배워야 하는 이민 2세들... 미국에 가 있는 막둥이 생각이 나서 우울해졌다. 내가 서울 사람들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서울 사람들을 어려워하게 되었다. 그들과의 사귐은 묘한 상처를 남긴다. 그들의 첫인상은 환한 미소와 절묘한 맞장구이다. 그것은 무뚝뚝한 남도 문화에서 자란 내게는 거의 벽이 없는 친밀함의 표시였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나도 그런 마음으로 대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들이 내게 두고 있는 묘한 거리감에 충격을 받는다. 그들이 정해 놓은 심리적 선을 나는 결코 밟을 수 없는 것이다. 표정없는 첫만남으로 시작해서, 깊은 속정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는 남도의 교제 문화와는 너무도 달라서, 나는 서울 사람들이 평범한 대인관계에서도 서비스직종에 있는 사람들처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피르자다 씨는 자신을 초대한 릴리아의 집에 갈 때마다 어린 릴리아에게 과자를 주는데, 쌩큐라고 인사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 대사를 아주 절감했다. "아니 왜 생큐라고 말하지? 은행의 출납 계원도 생큐라고 하고, 가게의 점원도 생큐라고 하고, 대출 기간이 지난 책을 돌려주어도 도서관 사서가 내게 생큐라고 하고, 국제 전화 교환원도 내 전화를 다카에 연결시키려다 실패하자 생큐라고 말해요. 만약 내가 이 나라에서 죽어 묻히게 된다면, 내 장례식에서도 생큐라고 할 겁니다"(148쪽)
서울사람들과의 친교에서 늘 상처를 받는 나도,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는 국제뉴스를 볼 뿐이고, 학교에서는 늘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만 공부해야 하는 릴리아도 이 대사가 풍기는 쓸쓸함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센 아주머니의 집」 - 엘리엇은 방과후에는 센 아주머니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센 아주머니는 교수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살지만, 아직까지 운전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전이란 미국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잖는가. 운전을 잘 하게 된다는 것은 거기에 잘 적응을 한다는 것이고, 운전을 잘 못하게 된다는 것은 그곳에서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운전 때문에 센 아주머니는 엘리엇을 돌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엘리엇의 어머니가 최상의 베이비(?)시터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센 아주머니가 엘리엇에게 끼친 그 유현함들을....엘리엇은 평생 잊을 수 있을까?
「축복받은 집」-이런 결혼도 있다. 서로 충분히 알기도 전에, 상대의 어떠함을 자신이 견딜 수 있을지 가늠해보기도 전에 그냥 해지는 결혼. 넉 달 전에 처음 만나 두 달 전에 결혼한 산지브와 트윙클 커플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연애 한 번 해 본적 없는 숫기 없고 조용한 청년 산지브와 말솜씨 좋고 표정이 풍부해서 사람들에게 '와우~'라는 감탄사를 듣는 트윙클. 연애 두 달 동안은 서로의 공통점만 보이던 그들은 서로 잘 살 수 있을까?^^ 집들이를 준비하기 위해 청소를 해 나가는 와중에 그 집에 전에 살던 사람이 놔두고 간 물건이 속속 출현한다. 모두 기독교 냄새가 나는(진짜 기독교인들이라면 이런 물건을 집안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들이라서, 우직한 산지브는 그런 물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트윙클은 무슨 숨은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그 물건들을 찾아나가고 정성스레 전시해서 집알이 온 손님들에게까지 그 놀이의 즐거움을 전염시킨다. 서로 너무 다른 이 부부 앞으로 많이 싸우겠지만, 또 서로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살아갈 것 같다. 축복받은 집이란 그런 집일 것이다. 시끄러운 집^^
「비비 할다르의 치료기」 - 29세의 비비 할다르는 내가 보기에는 간질 환자인 듯 싶다. 종종 일어나는 간질 발작 때문에 '신부수업-결혼-출산' 같은 인도 여성의 일반적인 삶을 가지지 못하고, 갖가지 치료법의 희생양이 되어 있다. 그녀의 보호자는 그녀의 사촌 할다르와 그의 아내인데, 비비를 결혼시키면 나을 것이라는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비비를 결혼시킬 일에는 아주 소극적이다. 그리고 노동력을 사용하고, 감금하고, 그들의 아이가 생겼을 때는 철저하게 격리시킨다. 비비가 인간다운(?)삶을 살게 된 것은 보호자라고 자처하는 할다르 부부가 비비를 버리고 이사를 가버린 후이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 경탄할 만한 생활력을 발휘하며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비가 이렇게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독자인 나도차도 예상못했던 일이라 신이 났다.^^ 할다르 부부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좀 모자란 듯 해요...라는 기준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주 폭력적인 생각이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 이 단편집의 마지막에 실린 소설이다. 대부분의 단편집은 첫소설만 멋지고, 나머지는 힘이 빠져있는 것이 많은데, 이 책은 마지막에 실린 단편마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벵갈 청년이 런던을 거쳐 미국에 온다. 미국이란 '모두들 자신이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영국식 예의는 기대할 수 없는'곳 아닌가. 거기서 만난 하숙집 주인 크로프트 부인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벵갈 청년에게 미국인이 달에 깃발을 꽂은 일에 대해서 '대단합니다'라고 칭찬을 해야지만, 자기 방으로 올라가게 하니, 나는 처음에 아주 미국식 자부심으로 가득찬 할머니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지금 연세가 100이 넘은 할머니이다. 남편없이 40년동안 피아노레슨을 하며서 자녀들을 길러낸 후,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다. 그 사실을 알고 다소 충격을 받은 이 청년은 할머니에게 더 자상해지지만, 본국에서 아내가 왔기 때문에, 그 하숙집을 떠난다. 그러나 아내를 데리고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그 뒤로도 자주 방문하고, 또 부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는 큰 슬픔을 맛본다. 부인이 살아온 세월, 부인이 견녀낸 1세기 가까운 시간...그것도 씩씩하게 버텨온 이 여인이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는 이 청년에게 준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누군가는 말했다. 훌륭하게 산다는 것은 허상이라고... 산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거라고.... 크로프트 부인이 견뎌낸 1세기 가까운 세월이나, 낯선 대륙에 자신의 가정을 만들어 정착한 '나'의 삶은 모두가 다 '달에 깃발을 꽂은'것 만큼이나 훌륭한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도 그것을 알았던 것 같다. 소설 마지막 몇 문단을 인용해 본다.
몇 년 안에 아들은 졸업을 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리라. 하지만 아들에게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낙나가는 따뜻하고 강인한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위로해 준다. 아들이 낙담할 때마다, 아버지도 세 대륙을 건너뛰며 살아 남았는데 네가 극복하지 못할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줄 수 있다. 우주 비행사는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몇 시간밖에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신세계에 거의 30년을 머물렀다. 나는 나의 업적이 평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출세하기 위하여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진출한 사람이 나만이 아니고 또 내가 첫 번째로 진출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여행한 그 모든 거리, 내가 해온 그 모든 식사,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 내가 잠잤던 그 모든 방 등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평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때로는 그것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