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내가 이 책을 읽으리라곤 나조차도 예상못한 일이다.
나에게 '한눈에 반하는 낭만적 사랑'이란
아랍어만큼이나 낯선 것인데다가,
Botton과의 첫만남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었는데, 무지무지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완독한 후,
'이 사람은 내 취향이 아니군'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책장을 덮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왜 집어들었던 걸까.
직장동료 미니씨가 '잘 읽히지 않아요'라고 했던 말이 우선 자극제가 되었다. 낭만적 사랑을 숭배할 나이의 미혼 여성에게 잘 읽히지 않는 책이란, 그냥 단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고,
나는 어떤 식으로든 반추력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2.
이 책의 한국판 제목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나는 글의 제목에 굉장히 집착하는 편인데,
물론 출판사 쪽에서 '사랑에 대하여'이런 류의 평범한 제목보다는
이런 선정적(?)인 제목을 더 좋아했겠지만,
그럼에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단 말인가....라는 의문에 매달리는
한 젊은 철학자의 진지한 표정이 떠오른단 말이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Botton을 글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겠다.
큭큭대면서 즐겁게 읽었다. 시치미떼는 듯 하면서도 정확한 묘사에 감탄하면서....

모든 것을 규정하고 언어화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이 이성과잉의 남자(이런 점에서 철학자보다는 물리학자가 훨씬 현실 적응력이 빠를겠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렸다.)가
욕망에 이성을 굴복당하는 것도 ,
욕망의 전 과정에서  자의식의 잔소리를 선명하게 느껴가는 것도 귀엽기(?) 짝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문학적인 괴물에 대해 이렇게 비문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니....
당신의 그 과학적 탐구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바임.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치열하게 이성적으로 따져서 알게 되었는가? 클로이가 앨리스이고, 앨리스는 또 누구이고, 그 모든 여자로도 당신의 갈망이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그래서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고, 당신은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되리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지금의 고통이 덜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얻고 싶은 어떤 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사랑에 대한 나의 냉소병이 고쳐진 것도 아니지만,
사랑의 상처를 겪은 한 남자가 이 글쓰기를 통해,
뭔가 정리를 해냈다는 점이 부러웠다.
눈에 확 띄는 통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격언일지라도
그것을 그냥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니까 말이다.





12쪽- 단지 우리 둘 다 전에는 누구에게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쪽-내 짐수레에는 독자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 짐수레를 권했다.--ㅋㅋㅋ 이 무슨 귀여운 변명이람.
22쪽-나 자신의 용서할 수 없는 감정적 미성숙 때문이기도 했다.
23쪽- 정말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하면서도-어쩌면 그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다른 사람은 끝도 없이 이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나도 클로이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중단하고 싶었던 내 욕망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희망이 자기 인식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 - 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심,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 - 을 상대에게서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66쪽- Crucho Marx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줄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 이 농담은 클럽 회원권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적용되는 진리이다.
101쪽 -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어떤 그림은 우리의 멱살을 쥐는 반면, 다른 그림은 아루먼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122쪽-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143쪽, 149쪽-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있을 뿐이다.
156쪽 - 결국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늘 낙인을 찍을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늘 단순한 "나"일  뿐이며, 낙인 찍혀진 부분들 사이를 쉽게, 다른 사람들의 선입관이 부가하는 제한 없이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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